꽁냥꽁냥을 너무들 원하시니까 꽁냥을 위해 코믹스러움을 위해 노력을 하려고 했으나 안되더라구요........죄송..ㅠㅠ
그냥 가만 생각해보니 두 사람이 한 번도 서로 마음을 내보인 적이 없는 것 같아서요....분위기에 휩쓸려서 떡만 쳤지.....
어쨌든 꽁냥은 물건너가.......흠흠..
참고로 여가 임금님으로 불리는 이유는 4편에서 짧게 거론된 적 있습니다..소곤..
이제 진짜 소재고갈......진짜로 안녕......근데 되게 완결삘난다.. 완결로 쳐도 되지않나?....
김신왕여
센티넬버스 06
지금에와서 생각하기에 정말이지 뜬금없었지만 여는 정확하게 신과 자신의 사이를 정의내리지 못했다. 센터에서 생활한 길기도, 짧기도 한 기간동안 달라진 생활환경은 과거에 자신이 어떻게 살았었고 어떤 사람을 만났고 무슨 일을 했었는지 같은 사사로운 일들을 가끔 새까맣게 잊혀지게끔 만들곤 했다. 그리고 과거에 꿈꿔왔었을 평범한 미래는 이제 더이상 존재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나서 여는 더욱 생각이 많아졌다. 지금은 10년후 20년후의 미래를 아무리 상상해보아도 그저 안개낀 어둠뿐, 그 어떤 것도 보이질 않았기 때문이다.
느지막이 일어나 교육을 받고 빈둥거리며 신이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가벼운 입맞춤을 나누고 너무나도 편하고 단조로운 일상이 반복되는 것이 여는 불안하기도 답답하기도 했다. 따박따박 들어오는 고액의 급여에도 여는 어딘가가, 무엇인가가 결여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덕화씨. 나 우울증인가봐요."
"혹시 요즘 부쩍 게을러지고 뭘 해도 금방 싫증나고 시들하고 그렇지 않아요?"
"와 대박. 어떻게 알아요?"
"그거네, 그럼."
귀신같이 증상을 맞추고 손바닥을 마주치며 눈동자를 빛내는 덕화를 여는 기대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딱 그 증상이라며 자신만만해하는 모습에 빨리 듣고 싶어진 여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재촉한다.
"권태기."
자신이 낸 대답이 뿌듯하다는 듯 입가에 호선을 그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덕화를 쳐다보는 여의 얼굴이 빠르게 굳어간다. 폭풍칭찬를 기대했던 덕화는 이상하게도 냉랭하게 굳어가는 공기에 그제서야 여를 향해 시선을 돌린다.
뭐요? 궈, 권 뭐? 날아드는 볼펜을 피해낸 덕화가 본인이 지은 죄가 뭔지도 모른 채 씩씩거리는 여를 남겨두고 줄행랑쳤다. 끝까지 쫓아가 엉덩이라도 걷어 차줄까 싶었지만 그마저도 나른하게 시들어간다. 애인도 아니고 부부도 아닌데 권태기는 무슨- 중얼거리던 여의 눈에 순간 의아함이 깃든다. 잠시 생각하는 듯한 그 얼굴에 드디어 무엇인가를 깨달았다는 듯한 선명함이 돌았다.
애인도 아닌데 설레임을 느끼고 부부도 아닌데 스스럼없이 몸을 섞고 센티넬과 가이드라는 명목을 빼버린다면 우리는 대체 뭐지? 만나자마자 목을 졸랐던 신을 생각하면 애초에 저 명목을 뺀다면 목숨줄이나 붙어있을 수 있었을까도 싶고, 지금은 그저 단순한 섹스파트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딱 그 관계라는 생각이 들자 여는 이상하게 마음 한 구석이 찌릿하게 시려왔다.
"아씨, 우울할 땐 치맥이지."
여는 오래간만에 아르바이트를 했던 치킨집 사장님을 찾아가기로 했다. 혈육도 친구도 그 무엇 하나도 가진 것 없는 자신에게 있어서는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였기에 힘든 일이 있어도 기쁜 일이 있어도 늘 찾아뵙곤 했다. 생계를 위해 일찍부터 아르바이트에 뛰어들었던 여를 가엾게 여겨 든든하게 먹어야한다며 끼니도 챙겨주시고 나쁜 친구를 만나면 혼도 내주시고 만약 이 사장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여의 인생이 어디로 어떻게 어긋났을 지는 모를 일이었다. 요근래 통 찾아뵙지 못했던 터라 치킨집으로 향하는 여의 발걸음이 가볍고 상쾌했다. 딸랑-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세월이 세월이니만큼 주름진 얼굴이지만 여전히 화사하게 웃으며 맞이해주시는 따뜻함이 존재했다.
"아이구, 우리 임금님 왔네?"
"사장님 오랜만이에요. 나 치맥 치맥!"
"근데 왜 혼자야? 파트너는 어디가고?"
"아 사장님까지 진짜 그러기에요? 금지금지 파트너 가이드 뭐 그런 단어 제앞에서 싹 다 금지!!"
입이 대빨만큼 튀어나와서는 씩씩거리며 구석 자리에 앚은 여가 투덜거린다. 사장님은 그런 여를 누가 키웠는지 예쁘게 잘 키웠다싶은 마치 손주를 대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아직 환한 바깥이 음주를 하기에 이른 시각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지만 여는 전혀 개의치않는다는 듯 시원하게 맥주를 들이켰다. 캬- 경쾌한 소리가 이어진다. 어지간히도 쌓인 게 많았던지 술이 물처럼 꿀렁꿀렁 넘어가는 것이 술이 잘 받는 날이 따로 있다는 말을 새삼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우리 임금님이 우울하다는데 장사가 다 뭐냐며 클로즈 간판을 내건 사장이 여의 맞은 편에 털썩 앉는다.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장사가 잘되니 일이 고되니 하는 소소한 담소를 나눈지 두시간 쯤 지났을 까 멀쩡하던 두 사람은 어딜 가고 망나니만 남았다.
"싸장님 나 수우우울!!!!!"
"아이고 임금님. 그만 마셔야지. 내일 일 안해??"
"안해안해. 나 안해. 다 때려칠거야!!!!"
사장은 혀가 잔뜩 꼬여 이미 인사불성이 된 여의 머리를 따스하게 쓰다듬는다. 누가 우리 임금님 마음을 이렇게 속상하게 만들었을꼬. 고 놈 얼굴이나 봐야겠네. 아주 혼쭐을 내주게. 사장은 여의 품을 뒤적거리다 외투주머니에서 폰을 찾아냈다. 이미 취한 여의 손가락을 들고 그 지문으로 잠금해제를 마친 사장이 연락처를 뒤져보는데 사장의 한 쪽 눈썹이 움찔 올라갔다 내려오길 반복한다. 언제는 우리 사장님이 번호 1번이라고 그렇게 애정을 쏟더니 지금은 김신 이라는 두 글자가 1번으로 승격해있다. 애인 생기면 부모고 뭐고 다 필요없다더니 실컷 키워놔봐야 소용없다는 생각에 사장은 괜히 여의 팔뚝을 찰싹 내리치며 흘겨본다. 맞아도 뭐가 그리 좋은지 베시시 웃으며 몸을 꼬아대는 모습을 보다 푹-한숨을 내쉰 사장이 저러다 안되겠다싶어 급하게 1번을 누른다.
페어라고 해서 24시간 내도록 붙어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외출을 할 때나 조금 장기간 떨어져야할 경우를 대비해 신과 여는 서로에게 어디 가면 간다 문자 정도는 보내주는 것으로 하자는 것을 원칙으로 정해두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늘은 연락이 한 통없이 장시간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여가 걱정이 되어 신은 먼저 전화를 걸려고 하던 참이었다. 그리고 곧 먼저 걸려온 전화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에 신의 미간은 더욱 깊게 주름이 잡혔다. 서둘러 외투를 집어드는 손놀림이 날카롭다.
"어!!!김씬씌다아--!!!"
얼마나 마셔댄건지 테이블 위를 굴러다니는 맥주병들을 한 번, 말리지 않고 같이 마신 상대를 한 번, 마지막으로 휘청이며 저를 삿대질하는 여를 한 번 쳐다본 신은 절로 튀어나오는 탄식에 눈가를 꾸욱 눌렀다. 자네가 우리 임금님 속을 뒤집어 놓은 그 김신이야? 보자마자 시비조로 말을 거는 사장에게 어색한 눈인사를 건넨 신은 여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발그레한 두 볼과 쾡하게 풀려 마시마로처럼 휜 눈이 귀엽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저렇게 횡설수설하는 주사가 있을 줄이야. 나중에 앞으로 술은 절대 금지라고 단단히 주의시켜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신이 여의 앞에 무릎을 꿇는다.
"발랑거리지말고 업혀."
"시러!!"
여의 상태로 가늠해보았을 때 쉽게 업혀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예상했지만 테이블에 엎드려 술잔을 굴리며 땡깡을 피우는가 하면 심지어는 발로 등을 꾸욱 밀어 차면서까지 업히기를 거부하는 통에 신은 난감함을 감추지 못했다. 게다가 여만큼은 아니지만 거나하게 취한 사장은 여전히 시비조의 잔소리를 멈추지 않는다. 그러게 좀 잘하지 그랬냐, 니가 뭔데 우리 임금님을 이렇게 울리냐. 나는 이 결혼 반대다. 등의 무슨 얼토당토 않는 말들을 늘어놓는데 신은 그냥 지금 당장 이 치킨집을 통째로 날려버리고 여를 둘러메고 뛰쳐나와버릴까까지 생각이 다다른다. 만취했어도 눈치는 있는지 어두워지는 신의 표정을 발견하고 힐끗힐끗 쳐다보던 여가 큰 소리로 딸꾹질을 해댄다. 딸꾹하는 깜찍한 소리에 또 금새 기분이 풀어져서는 표정을 풀자 언제 자기가 그랬냐는 듯 해사하게 웃던 여가 고꾸라지듯이 제 온 몸을 신의 등으로 내던지듯 업혀온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더니- 혀를 차는 사장에게 대충 눈인사를 건넨 후 신은 빠르게 그 곳을 빠져나왔다.
앉혀도 일어나고 눕혀도 일어나고를 오뚜기처럼 반복하는 여로 인해 신은 여를 잠재우기를 포기했다. 차라리 이쯤되면 재우는 것보다 술을 깨우는 것이 더 빠르겠다 싶은 생각에 꿀물을 타들고 여의 앞에 선다. 정말이지 최상급 센티넬을 시종처럼 부리는 이는 이 순간 여밖에 없을 것이다.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휘청휘청 거리는 여의 어깨를 가볍에 감싸 고정시키고 호호 불어 적당히 식은 꿀물을 입에 넣어주자 달콤함이 기분 좋은지 보기좋게 눈꼬리가 휜다. 꿀물을 다 들이키고나니 노곤하게 풀어진 그의 눈가가 발그레하게 익는다. 신은 그 눈가를 신기하다는 듯이 엄지로 지그시 문질러 본다.
"어쩌자고 이렇게 마셔?"
다그치는 말투가 지나치게 다정해서 취기에 정신없는 와중에도 여의 심장이 쓸데없이 쿵쾅거렸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당신에게 있노라고 마음껏 투정부리고 싶었지만 그것마저 할 수 있는 사이이긴 한가 싶어 망설여진다. 그저 자신과 신의 사이에 할 수 있는 것은 단조로운 몇 마디의 대화와 필요에 의해 몸을 부대끼는 것 밖에는 없질 않는가. 절반의 이끌림과 절반의 동정으로 쉽게 각인을 받아들였던 지난밤의 자신에게도 책임은 있는 것일까. 여는 그저 아무 생각없이 복잡한 생각을 무마시키고 싶어졌다.
무방비였던 신의 얼굴은 여의 손길에 쉽게 끌려왔고 그 당황한 얼굴을 부여잡고 무작정 입술을 들이밀었다. 달큰한 꿀냄새에 후각을 자극당하고 그만큼 달콤하기 그지없는 여라는 존재에 취해 당황스러웠던 마음은 어느새 저 멀리 날아가버렸다. 어색하게 자신의 양볼을 부여잡은 여의 손을 깍지껴 떼어내고 무게를 실으며 여를 침대에 눕히는 와중에도 여전히 떨어지지 않은 뜨거운 살덩어리가 더욱 더 깊이 달콤함을 취하기 위해 얽히고 또 얽히었다. 어느새 입술이 여의 목덜미로 미끄러지듯이 옮겨가고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허리를 더듬어 올라가는데 어딘가 모르게 훅 끼쳐오는 위화감에 신의 눈이 천천히 뜨여졌다. 내려다본 여의 몸이 뻣뻣하게 굳어 바들바들 떨리고 꼭 쥐어짜듯 감은 두 눈에서 눈물이 쉴새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뭐야? 괜찮아?"
열은 없는데, 어디가 안좋은거야? 여의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이마의 열을 확인하는 신의 손길이 한없이 따뜻하고 부드럽다. 하지만 그런 그의 손길만큼 뒤틀리는 마음과 비참해지는 자신을 여는 더이상 숨길 수가 없다. 입술을 한 번 짓이겨 문 여가 자신의 눈물을 닦아내는 신의 손을 찰싹- 날카롭게 쳐낸다.
"하지마요, 그런거어."
"무슨 말이야?"
갑자기 쳐내어진 손에 어색함을 느낄 새도 없이 손등으로 눈을 가린 채 울먹이는 여의 목소리에 정신이 쏠린다. 다짜고짜 하지 말라는 것이 이마의 열을 잰 것을 말하는 것인지 눈물을 닦은 것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이 있는 건지 신의 얼굴에 의문이 가득 떠올랐다. 질문에 대한 답은 내놓지를 않은 채 점차 흐느낌이 커지고 어깨를 들썩이기까지하는 여에 답답함을 느낀 신이 두 눈을 가린 그 손을 강제로 거두어 내리자 눈물로 엉망진창이 된 얼굴이 드러난다.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신은 자신의 심장이 절벽에서 내던져지는 기분이 들었다.
신은 유독 여의 눈물에 약했다. 처음 만남부터가 그러하였다. 스스로 자각하지 못할 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여는 늘 어딘가 모르게 신을 불안하게 했다. 생각보다 깊이 자리한 그 존재는 담담한 표정을 뒤집어쓰고 태연을 가장하지만 쉽게 속을 내보이지 않고, 기다란 속눈썹 속에 감춰진 눈동자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하고 손에 닿지 않으면 머릿속이 뜨거워진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기에 그것이 그저 센티넬과 가이드 사이에 존재하는 연결선이라고만 생각했고 부러 억제제까지 털어넣어보았지만 그 감정은 되려 선명해질 뿐이었다.
"늘 괜찮냐고 묻는 거, 다정하게 만지는 거어..꼭 우리가, 우리가 뭔가 된 것처러엄..그러니까 내 말은.."
취기가 가시지 않은 여의 목소리가 늘어진 테이프처럼 느리게 흘러나왔다. 답답할 만도 하건만 신의 두 귀는 완연하게 그 소리에 사로잡혀버린다.
"그러니까..마치 당신이이 좋아하기라도 하는 것처럼...나를..내가, 내가..착각하게 자꾸우....자꾸..."
늘어지고 늘어지다 결국 완전히 정지해버린 음성은 곧 색색 고른 숨소리로 바뀌며 정신을 놓는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신은 오히려 그런 여와 반대로 정신이 또렷해지다못해 세포 하나하나가 제멋대로 날뛰는 것 같은 감각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자신이 무슨 말을 내던진 건지도 모르고 이런 상황에 태평하게도 숨을 고르는 여를 밉지 않게 쳐다본 신이 가지런히 침대에 눕혀 이불을 덮어주고는 자신은 그 옆 소파에 털썩 몸을 주저앉혔다. 시선은 곧게 닫힌 눈꺼풀에서 떼지 못한 채다.
'당신이 나를 좋아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여의 목소리가 신의 머릿속을 사정없이 헤집으며 둥둥 떠다녔다. 좋아한다라. 신은 좋아한다는 감정을 어떻게 느끼는 것인지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좋아한다, 사랑한다는 호의가 섞인 감정보다는 끔찍하다, 두렵다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더 많이 접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다가감보다는 떠나감에 더 익숙한 삶이었기에 여의 입에서 흘러나온 좋아한다는 단어는 몹시 생소하기 그지없었다. 자신이 여에게 느끼는 이 감정을 그리 표현해도 옳은 것인가. 몇 번이고 되뇌이는 긴긴 새벽밤이 신을 미련하게도 붙잡고 늘어진다.
"으음..."
여는 찌뿌둥한 몸을 베베 꼬며 있는 힘껏 기지개를 폈다. 동시에 댕-하고 머리를 울려오는 통증에 기지개를 펴다말고 도로 머리를 부여잡아야 했지만 말이다. 어젯밤 치맥을 먹는답시고 예전에 알바를 했던 치킨집 사장님한테 갔었고 늦은 밤까지 따르시오-부으시오-를 반복했고 그 다음은 어떻게 됐더라. 눈동자가 위족으로 또르르 구르며 과거를 회상하고 곧 콸콸 수돗물처럼 쏟아져나오는 끔찍한 기억들에 여의 얼굴이 점차 흑빛으로 물들어갔다. 신의 등을 걷어차고, 야, 너 막말을 퍼붓고, 입술을 들이밀고, 심지어 무덤까지 갖고가리라 다짐했던 속마음까지 줄줄 읊어대던 어리석은 자신의 모습이 선연하게 떠오른다. 아오! 왕여 이 미친- 육성으로 튀어나오는 절망감에 여는 이불을 뻥 걷어차며 몸을 단번에 일으켰다. 앞으로 신을 어떻게 보려고 이런 망측한 짓을- 자신의 머리를 두 손으로 쿵쿵 내리치며 후회에 또 후회를 겹겹이 쌓아올리는데 갑자기 이 순간 가장 듣고싶지 않은 목소리가 툭 날아든다.
"일어났어?"
두두둑- 삐그덕대는 고개가 어색하게 돌아가 신의 눈을 마주한다. 괜히 뜨끔한 여가 움찔했지만 신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은 듯한 표정으로 축 늘어뜨린 몸을 소파에 기대고 있었다. 여의 동공이 빠르게 진동했다. 이 상황을 어떤 말로, 어떤 방식으로 벗어날 수 있을까에 대한 방향을 모색하느라 머릿속을 풀가동시켜보지만 도무지 벗어날 방법이 없다. 최후의 수단으로 씻으러라도 간다고 말해볼까하는 마음에 이불을 걷어내고 몸을 일으키는데 먼저 말을 건넨 것은 신이었다.
"어제는.."
"아! 어제! 어제는 제가 술을 많이, 어..그러니까 기, 기억이.."
신의 입에서 뭔가 폭탄같은 발언이 튀어나오기 전에 먼저 선수쳐 입을 막아버리는 여다. 그 어처구니없이 과장된 표정과 행동이 여과없이 신의 눈에 들어박힌다. 뻔히 보이는 거짓에도 신은 뭐라 토를 달 생각은 없었다. 아니 토를 달 수가 없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많은 생각이 스쳤고 많은 고민을 안았다. 퀭하게 꺼진 두 눈이 밤새 그가 시달렸을 누구보다 길었을 새벽을 짐작케 해준다. 제법 피곤했던지 눈 사이를 손가락으로 꾸욱 누르며 마사지하던 신이 곧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여가 있는 침대 끄트머리에 걸터앉았다. 지레 겁먹은 여가 괜히 뒷걸음질쳐 신에게서 멀찍이 떨어진 자리에 엉덩이를 붙인다.
"기억이 나든, 기억이 나질 않든 그냥 들어."
평소와는 다른 차분한 분위기의 신이 천천히 눈을 한 번 감았다 떴다. 고요하게 가라앉은 그의 옆얼굴을 바라보는 여의 손끝이 찌릿하고 저려왔다. 술김에 내던진 자신의 말에 어떠한 답이라도 내놓고 싶은 것일까. 썩 긍정적인 말이 나올 것 같지 않은 분위기에 여는 그것을 굳이 지금 해야하나싶은 마음이 들었다. 안그래도 충분히 망신스러운데, 이런 기분을 두 번 달아서 맞이하긴 싫은데. 신에게는 들리지 않을 작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떨군다.
"자꾸 신경이 쓰여 니가."
예상하지 못한 말에 번뜩 치켜들어진 여의 시선이 신을 향해 고정했다. 여전히 신의 시선은 여를 향하지 않았지만 어딘가 초조한 듯 또 어딘가 진지한 듯도 한 생판 처음 보는 그의 얼굴에 여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늘 생각이 나. 같이 있는데도 닿고 싶고, 떨어져 있으면 가끔 니 생각에 멍청이처럼 웃곤 하지. 너와 함께하면서 태어나 처음으로 느끼는 이 많은 감정들이 니가 말하는 그런 것이라면.. 그렇다면.."
마치 고해성사라도 하듯 줄줄이 읊어지는 진심들에 여의 심장은 이미 아까전부터 제멋대로 날뛰어대고 있었다. 늘 차갑고 한결같이 무표정인 남자가 자신을 생각하며 웃음지었다고 생각하니 발끝부터 머리카락 한 올 한 올까지도 구름 위에 있는 듯 몽글한 기분이 들었다. 이불 위를 의미없는 움직임으로 죽 죽 그어대던 신의 손가락이 멈추고, 곧 결연에 찬 그 시선이 여를 향한다. 갑자기 맞닿은 시선에 여의 눈동자가 동요했지만 피하지는 않았다.
"내가 널 좋아해도 될까?"
심장을 넘실거리며 아슬하게 억눌려있던 뜨거운 감정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넘쳐흐른다. 그 벅차오름에 여는 저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났다. 뭐라고든 대답을 하고싶은데 목이 매여 입술만 달싹이다 결국 어린아이처럼 힘차게 고개를 아래위로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우는 것에 당황한 건지 허락해줄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건지 제법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신을 보던 여가 먼저 그 품으로 달려들어 안겼다.
아니 그러니까 왜 그런것까지 동의를 구하냐고요- 울먹이며 덧붙이자 그제서야 공중에 붕 뜬 두 손이 허리를 그러당겨 바짝 힘주어 마주안아온다. 미소가 걸린 입꼬리가 여의 어깨에 파묻혔다. 펄떡이는 뜨거운 맥박이 서로를 향한 완전한 각인으로 스며들고 더할나위없이 들어맞는 하나의 형태가 된다.
때로는 처절하게 때로는 숨가쁘게 걸어나가야 할 앞으로의 수만갈래 길을 그래도 꽉 맞닿은 이 온기 하나라면 기꺼이 그것마저 받들겠노라고 다짐하고 또 맹새한 어느 따뜻한 봄 햇살이 비추는 이른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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