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티넬버스 세계관의 매력은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센티넬이 오직 자기 가이드한테만 강아지처럼 온순해진다는 것 같아요. 내 사람한테만 다정한 ... 핡!! 근데 문제는 이런 주제는 저의 상상력부족으로 인해 아마도 분명 안되겠죠 안될거야 난...
김신왕여
센티넬버스 02
"뭣하면 지금 당장 니 센티넬은 나 하나라는 걸 온 몸에 새겨줄 수도 있는데 어때?"
김신이란 사람은 정말이지 뼛속까지 개새끼였다. 아니 혈관에 흐르는 피 한 방울 한 방울이 악마와 같이 검은 형상을 하고 있을 것임에 분명했다. 여의 입술이 분노를 이기지 못해 파르르 공명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일이 잘못 틀어진 것인지 가늠할 수 조차 없었다. 고액의 알바에 눈이 먼 것, 가이드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 짝이라고 만난 센티넬의 성별이 남자인 것, 그 센티넬이 잔혹한 성미를 가진 것. 이 모든 일들이 단 하루만에 자신에게 일어났고 맞닥뜨린 결과가 지금 이 상황이라는 것에 어처구니가 없고 현실감마저 없었다. 여는 그저 억울했다. 정말이지 너무도 억울한데 누구를 원망해야할 지 알수가 없었고 서서히 목시울이 뜨끈해지고 시야가 흐려졌다. 눈동자를 가득 채운 눈물이 끝끝내 후두둑 넘쳐흐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신의 미간에 주름이 가득 잡힌다. 험악해지는 표정에 여의 어깨가 괜히 더 위축된다.
"거짓말.."
"뭐?"
"해칠 이유 없다고 아까 흐읍..그래놓고서..."
여는 건드리면 곧 어린아이처럼 울음이 터질 것 같은 모양새였다. 꼴에 사내라고 자존심은 바짝 세워서는 끅끅 억지로 눈물을 참아내는 모습이 퍽이나 우스꽝스러워 신은 풍선에 바람이 빠지듯 푸스스 웃음이 터지고야 말았다. 사진으로 봤을 때는 그저 허여멀그리한 멍청이 딱 그 정도의 첫인상이었다. 두 번째는 멍청한데다 시건방지기까지한 꼬맹이. 그리고 지금은..지금은 뭐지? 심장께가 간질간질했다. 누군가를 향해 진심으로 웃어보인 것도 누군가가 흘리는 눈물에 이렇게도 마음이 느슨해지는 것도 그 모든 것이 신에게는 처음이었다. 단지 여가 자신의 가이드이기 때문인걸까.
"난 거짓말은 하지 않아.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러니 내 경고는 잊지않는 게 좋아."
"..."
신의 입술이 가볍게 여의 이마에 내려앉았다 떨어졌다. 쾅-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서야 여는 멍하니 떨어져 있던 정신을 다잡았다. 왜인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양볼이 후끈 달아오르고 신의 입술이 닿았다 떨어진 이마가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이질감이 들었다. 여는 발에 채이는 이불을 끌어올려 덮어썼다. 귓볼이 터질 듯이 붉게 물들었다.
"저 사람 뭐야 대체..."
그 날 그 밤 이후로 딱히 부러 피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으나 신의 얼굴을 보기가 몹시 힘들어졌다. '내 가이드' 라고 각인까지 시키겠다고 덤벼들던 센티넬은 어디갔는지 어쩌다 우연히 복도에서 마주친다해도 특별히 말을 건다거나 하는 행위도 일절 없었고 눈인사만 대충 하고 사라지기 급급한 신을 여는 의아해하며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일주일 즈음 지났을까 답답함에 견디지 못한 여가 먼저 팀장 엘의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어서와요 왕여씨.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그게 아니라, 순전히 제 착각일 수도 있는데 김신씨가 절 피하는 거 같아서요."
엘은 알만하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였다. '이런 말을 당사자가 아닌 내가 해도 되는진 모르겠는데..' 로 운을 뗀 엘은 김신이라는 사람에 대해 꽤나 많은 정보를 알려주었다. 어릴 적 부모를 폭주한 센티넬에 의해 잃었고 그 후 자신 역시 센티넬로 발현하면서 스스로에게 큰 혐오감을 느꼈었다고. 그리고 최상급 센티넬이 오랜 세월 가이드도 없이 약으로만 버텨왔으니 정신적으로 이미 많이 지쳐있는 상태인데다 자신 역시 언제 폭주해서 제 부모를 죽인 그 센티넬처럼 변할 지 모른다는 강박에 늘 시달리고 있었다는 것. 그냥 단순히 성격 괴팍한 미친놈인 줄 알았는데 ,여는 기나긴 이야기를 들으면서 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 내면에 얼마나 많은 아픔을 눌러담고 있는 것인지 꺼내 보고싶다는 생각도 잠깐 들었던 것도 같았다.
"표현은 서툴지만 김신씨는 기회를 주려는 거에요."
"무슨 기회요?"
"도망칠 기회. 혹은 도망치지 않을 각오."
여의 얼굴이 복잡하게 구겨졌다. 아니 자기가 대체 무엇이관데 자신이 도망치고 말고를 기회를 주네 마네 난리인 것인지. 그리고 도망가면 뭐 자기가 어쩔거야 죽이기라도 할 거야? 속으로 푸념을 잔뜩 늘어놓던 여의 표정이 얼마 가지 않아 곧 파리하게 질렸다. 아아- 그는 죽일 거야 그 누구든. 그 무엇이든. 이것이 그 기나긴 푸념의 종착역이었기 때문이다.
"참으로 친절하시게도 기회를 다 주시니 생각 좀 해볼게요..그럼 이만."
극존칭까지 써가며 김신을 비꼬아대는 여에 엘은 어색하게 웃음을 띄웠다. 도망과 각오 두 가지 선택권밖에 없다면 당연히 전자 쪽을 추천하고 싶고 또 그 선택을 도와주고도 싶지만 센터입장에서 고려해보았을 때 여는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그랬기에 섣불리 그 선택을 권할 입장이 되지 못했고 얼떨결에 김신을 떠안게 된 그에게는 그저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꾸벅 인사를 마친 여가 멍하니 계단을 내려왔다. 그리고 자신이 내리게 될 어떤 결정으로 인해 파급될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본다. 정말로 운이 좋게 잘만 도망을 치면 배는 곯겠지만 원하던 평범한 삶이 가능할 지도 모른다. 평범하게 회사를 다니고 평범하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하지만 결국 폭주하게 될 김신씨는 어떻게 되는 거지? 김신씨가 말한 목숨줄이라는 것이 이렇게 무거운 것이었나. 지독하게도 평범했던 삶이었다. 누군가의 생사를 손에 쥘 일은 결코 없을만한 그저 그렇고 누구에게나 있는 그런. 답은 정해져 있으니 그저 자신은 대답을 하면 될 뿐인 젠장맞은 이 상황이 여는 몹시 화가났지만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다. 여는 괜히 쿵쿵 큰소리를 내며 발을 내딛는다. 조용한 복도가 쩌렁쩌렁 울렸다. 그리고 그 화풀이에 대한 메아리는 엉뚱하게도 삐- 삐- 붉은 경고음으로 되돌아왔고 화들짝 놀란 여는 그 자리에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헉. 죄송해요. 조용조용히 걸을게요."
좀 시끄럽게 걸었다고 이렇게 경고음까지 울리실 건 없잖아요. 말을 이으며 귀를 틀어막고 주변의 눈치를 보는데 분위기가 뭔가 심상치가 않다. 빨간색 경고등과 사이렌소리가 정신없이 교차되고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많은 사람들이 앞뒤 잴 것 없이 분주하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멀뚱히 선 여는 마치 자기 자신만 다른 세상에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지나가는 연구원 하나를 붙잡고 이유를 물으려고 하니 대답할 시간도 없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달려가버리는 통에 초조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어설프게 사람들이 달리는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달려가보는데 귓전을 울리는 센터내방송으로 인해 여의 걸음이 우뚝 멈춰섰다.
-WM B구역 4번 통로. 폭주한 센티넬 출현. 사상자는 대략 스물넷. 주변에 계신 분은 빠른 대피바랍니다.-
뭐? 폭주한 센티넬? 그리고 B구역 4번 통로면 이 주변이잖아. 여는 혼란스러운 머리를 감싸쥐었다. 노멀로 살 시절의 평화로움과는 거리가 먼 일촉즉발의 전쟁같은 상황에 놀란 마음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설마 그 폭주한 센티넬이 김신씨는 아니겠지, 아닐거야. 하는 불안함이 혼란스러움의 더 큰 원인이었다. 그리고 그 혼란스러움도 잠시 고막을 찢을 듯이 들려오는 괴기스러운 소리에 여는 주저앉을 뻔 한 것을 겨우 견뎌내고 벽에 손을 짚었다.
"윽, 씨발 이게 대체 뭐야."
다리가 후들거리고 온 정신이 뒤죽박죽이었다. 헛구역질로 올라온 위산이 식도를 태울 듯이 타고 내린다. 한 손으로는 귀를 한 손으로는 입을 틀어막은 여는 억지로 한 걸음 한 걸음 앞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어떻게 해서든 이 곳을 벗어나야한다는 일념뿐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갈수록 짙어지는 피비린내와 고통에 몸부림치며 바닥을 나뒹구는 사람들로 인해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의 문이 서서히 닫히고 있었다. 하지만 멈출 수가 없어 여는 마지막 힘을 짜내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아까 자신의 손을 뿌리치고 갔던 연구원이 두 눈을 감지도 못한 채 피를 쏟아내고 있는 장면을 맞닥뜨리고 말았다. 핏발 선 그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을 때 여는 그만 우욱-소리를 내며 앞으로 고꾸라지듯 상체를 숙였다. 두려움을 대면한 여의 눈동자는 쉴새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이렇게 죽는구나. 죽음 앞에 인간은 이렇게도 하찮구나. 심장을 움켜쥐고 주저앉으려던 그 때 터벅 터벅 투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고 여는 천천히 소리가 난 방향으로 시선을 들어올렸다. 피가 튄 구둣발, 길게 뻗은 다리, 대충 걸친 흰색 셔츠, 그리고 무미건조한 얼굴. 김신이었다.
김신을 발견하자마자 여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여전히 눈물은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 마냥 콸콸 쏟아지고 있었다. 제발 그것만은 아니길 바랐는데 폭주한 센티넬이라는 것이 결국 김신 저 사람이었단 말인가. 이렇게 많은 사람이 다치고 고통스러워할 줄 알았다면 좀 더 빨리 결정할 걸. 한 사람의 인생을 결국 자신의 부모를 죽인 그 괴물처럼 파멸의 길로 내몰아갈 것을 알았다면 좀 더 빨리 안아줄 걸. 여는 비틀거리면서도 벽을 짚은 손을 떼고 몸을 바로 세웠다. 최상급 센티넬을 적으로 마주하고 있는 지금, 어차피 살아서 나가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니 마지막 순간을 후회로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온 마음을 담아 저 사람을 안아주어야 겠다. 두려움과 미안함과 염려를 담아. 여가 단번에 신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김신씨. 정신차려요. 제발!!! 뭐든 다 할테니까 제발요!!!"
질끈 감은 두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방울이 신의 셔츠에 수를 놓듯 번져나갔다. 허리를 꼬옥 껴안은 두 팔이 사시나무떨 듯 경련했다. 여전히 건조한 눈으로 제 품에 안긴 여의 정수리를 내려다 보던 신이 허리에 둘러진 여의 팔을 천천히 떼어낸다. 곧 죽는다는 생각에 감은 눈을 뜨지도 못하고 여의 몸이 빳빳하게 굳었다. 그런 여의 허리에 손을 감고 바짝 당겨 안은 신은 손가락으로 가볍게 여의 이마를 콩- 튕겼다. 깜짝 놀라 자동반사적으로 눈이 크게 띄여진 여를 향해 다소 관조적인 미소를 보인 신은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열렬한 고백은 환영인데, 폭주한 건 내가 아니라 니 뒤에 있는 저 자야."
딸꾹-소리와 함께 여의 눈물이 쏙 들어감과 동시에 몇 초간의 정적이 돌았다. 그리고 곧 여의 얼굴이 화르르 불타 없어질 듯이 새빨갛게 익었다.
"씨발, 쪽팔려."
민망함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자세의 여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제 머리를 짚었다. '골때린다 왕여. 망신도 이런 개망신이 없어. 머리는 달고 어디다 쓰냐. 아오 씨 진짜 쪽팔려! 아니 잠깐 근데 뭐? 폭주한 센티넬이 내 뒤에 있다고?' 여의 고개가 호기심으로 인해 자동으로 그 센티넬을 향해 돌아간다. 아니 돌아갔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신의 손이 더 빨랐다. 여의 턱을 붙잡아 단단히 고정 시킨 신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댕그랗게 뜬 눈을 똑바로 주시하며 경고했다.
"너는 나만 봐."
사실 신은 몹시 기분이 좋지 않았다. 폭주한 센티넬이 출현한 것이야 빈번하진 않더라도 간간히 있던 일이라 그다지 놀라운 일도 아니었고 그저 귀찮은 일이 생겼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문제는 출현한 위치와 제 가이드의 행방이었다. 여가 그 곳에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듣자마자, 가는 길 곳곳마다 사체가 나뒹구는 꼬라지를 보자마자 신은 피가 거꾸로 솟았다. 그리고 저 멀리서 파리하게 질린 얼굴로 비틀거리면서 걸어오는 여를 마주했을 때 저를 담은 그 눈동자는 오롯이 두려움만이 가득차있었다. 그 순간 신은 마치 어떠한 감정이 결여된 것마냥 끝없는 갈증에 속이 타들어갔다. 어느새 제 발 아래에 깔린 것들도 고통스러운 소음도 그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가치없는 이 모든 것들이, 이 세상이 재가 되어 사라져버린다면 그 뿐인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여가 제 품에 뛰어들기 바로 그 직전까지는 말이다. 죄책감과 연민과 두려움이 담긴 눈물이 신의 심장을 흥건하게 적셨다. 그것은 신에게 견디지 못할 아픔과 고독 속에서의 한 줄기 희망이자 빛이었다.
"이건 그 열렬한 고백에 대한 대답."
신은 새하얀 목덜미를 감싸쥐고 멍하니 벌어진 입술을 집어 삼킬 듯이 베어 물었다. 발끈하듯 치켜떠진 눈매가 놀라움과 당황으로 더욱 커졌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긴장이 역력한 몸으로 바들바들 떠는 여의 몸을 더욱 강하게 끌어당겼다. 혀를 세워 뜨거운 살덩이를 도망치지 못하게 옭아매고 그의 모든 것을 앗아갈듯이 빨아당겼다. 여에게서 흘러나오는 체취와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는 타액과 희미하게 퍼져가는 숨과 그의 관한 그 모든 것들이 신을 미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저 키스일 뿐인데도 온 몸을 관통하는 듯한 쾌감이 넘쳐흐른다. 신은 이제는 거의 자국이 사라진 여의 목덜미에 입술과 코를 묻고 한껏 숨을 들이마셨다. 흐읏- 가늘게 신음하는 여를 온 몸으로 느끼며 신은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버러지같은 게 감히-' 곧 괴기스러운 비명소리와 살이 찢기는 소리가 불규칙적으로 귀를 찢을 듯이 울려댔고 그것은 얼마가지 못해 서서히 멎어 들어갔다. 조각난 피과 살점들이 온 벽과 바닥에 튀어 눌러붙었고 이 광경은 누가봐도 토악질이 올라올 정도로 추하고도 역겨운 것이었다. 사방을 가득 채우는 비릿한 피냄새에 결국 버티고 버티던 여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그로테스크한 상황과는 상반되게도 여를 안아든 신의 얼굴은 평화로운 미소가 만연했다. 신은 이제서야 결여되었던 퍼즐 조각이 완벽하게 끼워 맞춰져 팔딱팔딱 살아 숨쉬는 제 심장을 느꼈다. 살아있었다. 살아갈 것이다. 이 아이의 온기와 더불어. 온전히 모든 것을 받아 들이고 쏟아 부을 것이다. 아아- 달콤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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