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는 나를 떠나갔지만 나에겐 깨비이혁이 남았습니다...ㅠㅠㅠㅠㅠㅠㅠ
훌륭한 조합이네요. 도깨비와 환생한 사자 강력계 형사 이혁이라니. 사랑해요..
깨비이혁
다시 시작 01
부슬부슬 떨어지는 빗방울이 차창을 정신없이 때리는 이런 날이면 누군가가 머리를 쾅 내리치는 것 마냥 고통스러운 감각이 하루 온종일을 괴롭히곤 했다. 언제가 시작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비와 고통은 늘 혁을 따라다녔다. 가장 큰 무언가를 잃어버린 기분. 그것이 무엇인지 도통 알 수가 없는데도 그게 무엇이건간에 너무도 그립고 너무도 따뜻하고 너무나도 소중한. 습관처럼 들고 다니는 약통을 주머니에서 꺼내드는데 젠장- 안이 텅 비어있다. 혁은 투덜거리듯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눌렀다.
"선배님 괜찮으십니까? 비가 오는데.."
서내에서 혁은 꽤나 유명인사였다. 강력계 저승사자 이혁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창백하리만치 새하얀 피부에 붉은 입술 그리고 평소 즐겨 입는 까만 색 옷들같은 이런 외견으로 인해 붙은 별명이기도 했지만 비만 오면 미친놈처럼 범인을 잡겠다고 쏘다니는 불같은 성미탓이 더 컸다. 그래서 비만 오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비오는 날은 누구도 함부로 이혁을 건드리지 말 것' 이 암묵적인 강력1팀의 룰이었다.
"괜찮아. 나 대신 조서 좀. 약이 다 떨어져서."
머리 위로 빈 약통을 흔들어보인 혁은 다소 귀찮은 듯한 표정으로 경찰서를 나섰다. 꾸무리한 잿빛 하늘에 쏟아지는 비를 올려다보니 또 다시 이유모를 공허함이 닥쳐와 심장이 저릿한다. 저도 모르게 후두둑 떨어지는 눈물이 빗방울에 씻겨져 사라진다. 밤마다 콸콸 쏟아지는 눈물과 불안함. 비만 오면 정신을 놓아버리는 자신이 이상해 정신과에 상담도 받아봤지만 우울증이다 공황장애다 다들 다른 소견만을 보일 뿐 큰 차도는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혁은 담배를 꺼내 물며 불을 붙였다. 후- 자욱한 연기가 빗방울 사이로 얽혀든다. 그리고 그 연기 사이의 한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찾았다."
송곳같이 가슴을 후벼 파던 비가 탄식에 가까운 담배 연기가 마치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듯 느리게 느껴졌다. 검정색 긴 코트를 입은 장신의 실루엣이 제 키 만큼이나 큰 우산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따뜻한 목소리가 귓가를 속삭였고 그 눈빛이 오롯이 자신을 향해 있었다. 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얼굴임이 분명할텐데도 이토록이나 익숙하고 저 아련한 미소에 왜 이렇게나 안도감이 드는지. 혁은 뒤늦은 창피함에 눈가의 눈물자욱을 지워내며 그 장신의 사내에게로 다가갔다.
"혹시 우리 구면인가요?"
"그런 면이 있네요."
신은 피식-하고 새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여가 도깨비터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의 모습이 똑같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마치 운명처럼. 근 백년을 기다렸다.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가고 오늘은 어디선가 울고 있진 않을까. 내일은 또 어디선가 아파하고 있진 않을까. 매일이 피말리는 듯한 고통이었다. 어디에서 어떤 얼굴로 태어나든 반드시 행복하기를, 어떻게든 찾아낼 것이니 제발. 해마다 등을 올리며 그리 빌었었다.
"이름이 뭡니까? 전혀 생각이 안나서."
"지금은 유신재."
"지금은?"
그냥 유신재면 유신재지 '지금은'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분명히 어디선가 마주한 얼굴인데도 기억은 나질 않는다. 혁은 아무리 생각을 해도 떠오르지 않는 기억에 인상을 찌푸렸다. 마치 항상 곁에 있었던 것 마냥 익숙하기만 한데 분명 저 미소는 자신이 알고 있는 미소임이 분명한데 어째서 이리도 꽉 막힌 도로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인 것인지. 이런 제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당사자인 유신재라 칭하는 사람은 은은한 미소만을 머금고 있을 뿐이었다.
"당신은 나를 알고 나는 당신을 모르고. 그렇다면 딱 그거네."
".....?"
"당신 뭐 전과범입니까? 사기? 절도?"
푸스스- 터진 웃음이 간지럽게도 혁의 정신을 어지럽힌다. 척 봐도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옷을 두르고 허우대 좋고 인상도 좋고 형사인 자신조차 빠져들게 만드는 부드러운 목소리까지. 역시 사기전과가 있는 냥반인가.. 혁은 제멋대로 판단하고 고개를 주억였다. 당사자는 여전이 여유로운 미소를 입에 건 채였고 혁은 그런 그의 모습에 점점 심기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경찰서엔 무슨 일이시죠?"
"누굴 좀 만나러.."
"그게 저는 아닐테고."
"그렇다면 잡혀가나요?"
혁은 갈수록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그의 정체에 혼란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광대에 미세한 경련이 일었다. 신은 그것을 놓치지 않고 한 번 더 빙긋 웃어보였다. 천년의 삶에 비하면 백년의 기다림이 별 것은 아니었으나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백년은 어렵게 피고 쉽게 져버리는 꽃잎처럼 서글프고 공허함이었다. 찾았으니 되었다. 얼굴 봤으니 되었다. 새로운 인생을 사는 이에게 저같은 불멸의 도깨비가 나타나 좋을 일이 없을 것이다. 몇 번을 되내이고 되내였지만 이내 떠나기 전 여가 남긴 한 마디가 온 정신을 잠식하고야 만다. '반드시 날 찾아줘. 어디에 있든 어떤 모습으로든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잠깐 잠잠해졌던 비가 다시 거세게 땅을 때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다시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바닥으로 툭툭 내리치며 혁이 투덜거렸다.
"아이씨. 왜 또 비가.."
"미안합니다. 내가 지금 좀 우울해서요."
도대체가 제 앞에 있는 이 사람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비가 내리는 데 왜 자신이 사과를 하는 걸까. 마치 자신이 우울하면 비가 내리기라도 한다는 것처럼. '지금 내가 무슨 상상을 하고 있는거야' 혁은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 코웃음을 쳤다. 아무튼 어디로 어떻게 보나 수상한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 경찰서 앞을 서성이게 둘 수는 없으니 확실한 신원확인을 위해 명함이라도 달라고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한 발자국 다가서는데 갑작스레 자신을 부르는 다급한 목소리에 혁이 어정쩡하게 뒤돌아본다.
"선배님!!아직 멀리 안가셔서 다행입니다! 신사동 눈치새끼가 떴답니다!"
"뭐?눈치 그 새끼가?"
'신사동눈치' 재래시장 일대를 돌며 장보는 사람뿐만 아니라 상인들이며 외국인 관광객들까지 전문적으로 지갑을 터는 유명한 소매치기다. 신사동 일대에 시도때도없이 나타난다 하여 '신사동눈치'라는 유명한 별명까지 얻은 놈이었다. 얼마나 허탕을 많이 쳤는지 눈치에 눈자만 들어도 혁은 허파통이 뒤집어 질 기세였다. 담배를 신경질적으로 발로 문질러 끈 혁이 자켓 윗도리에서 차키를 꺼내 집어던지며 소리쳤다.
"최민재 빨리 시동걸어! 그리고 지금은 유신재씨. 명함 하나 줘보시겠습니까? 워낙 신분이 수상하신 분이라."
"남의 신분을 묻기 전에 본인부터 밝히는 게 순서 아닌가?"
아..하는 짧은 탄식과 함께 몸을 이래저래 뒤척이던 혁이 품 안에서 각잡힌 종이를 내민다. '강남서 강력1팀 이혁' 금박으로 새겨진 그 글씨를 하나하나 아로새기듯이 훑은 신의 얼굴에 그리운 미소가 걸린다. 자신은 왜 명함이 없냐며 넌 명함 있어서 좋겠다며 투덜거리던 여가 이번 생에엔 이렇게 당당히 명함을 갖게 된 것이 기특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왕이며 저승사자며 그렇게 나랏일을 하더니 이번 생도 너는 결국 나랏일을 하는구나. 재촉하듯 손바닥을 내민 혁에 신은 느릿하게 자신의 명함을 올려둔다. 'iloom 대표이사 유신재' 혁은 오히려 명함을 받고 나서 더 혼란스러웠다. 이렇게 대단한 사람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고 전혀 매칭이 안되는 외모이기도 했기에. 아무튼 사실확인은 차차 하기로 하고 지금은 '신사동눈치'쪽이 더 급했다.
"아무튼 다음에, 아, 아니 볼 일이 없는 게 서로 좋은 거니까 보지맙시다. 전 바빠서 그럼 이만."
급하게 자신을 스쳐 시동 걸린 승용차로 뛰어드는 혁의 뒷모습을 신은 느릿하게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바라보았다. 그리고 혁의 과거인지 미래인지 알 수 없는 복잡한 환영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와 신의 의식을 집어삼켰다. 어두운 골목길. 고장난 듯 깜빡이는 가로등 불 빛. 정신없이 도망치는 한 남자와 그를 쫓는 한 그림자. 곧 사방으로 튀는 새빨간 피..그 피를 뒤집어 쓴 새하얀 얼굴..그리운 얼굴.. 신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분노로 뒤덮혔다. 세상 모든 것을 다 멸해버리기라도 할 듯이. 희번뜩 천둥번개가 콰광! 요란한 소리와 함께 깨끗한 하늘을 깨부수듯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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