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가 없는 금,토요일은 외롭군요 ㅠㅠㅠㅠ
깨비이혁/김신이혁
다시 시작 02
"야! 너 이 새끼 거기 안 서?!!!!!!"
얼마나 주도면밀하게 도망갈 구멍을 마련해두는지 요리조리 잘도 피해다니는 녀석을 체포하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결국 갈림길의 기로에 서 민재를 눈짓으로 왼쪽으로 보낸 혁은 오른쪽 길목을 들어섰다. 운이 좋다고 해야할 지 마침 범인의 뒷통수가 혁의 눈에 들어왔다. 범인을 쫓는 혁의 발걸음이 그 어느 때보다 다급했다. 이번에 놓치면 또 꼬리를 밟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어떻게 잡은 단서인데 이대로 놓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구역질이 나고 심장이 터질 것 같지만 달음질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범인을 쫓아 골목커브를 도는데 갑자기 녀석이 멈춰선다. 높은 담이 올라선 가로막길에 막힌 것이다. 혁의 눈동자가 초롱초롱해졌다. 이제 이 기나긴 추격전을 끝낼 수 있다는 기대에 가득 찬 그런 눈빛이었다.
"이제 더이상 도망칠 곳은 없어. 순순히 따라오는 게 좋을거야. 머리 위로 손들고 천천히 뒤돌아."
쯧- 혀차는 소리와 함께 범인이 천천히 머리 위로 손을 들어올리며 뒤돌기 시작했다. 의외로 순순히 제 말을 잘 따라주어 혁은 잠깐 의아함을 품었지만 녀석도 이젠 도망치는 것에 지쳐있었겠으려니 하고 그저 지금 녀석을 체포할 수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두기로 했다. 뒷주머니에서 수갑을 꺼내들며 범인 뒤로 붙어선 혁이 범인의 한 쪽 손목에 수갑을 걸었다.
"당신을 공갈협박 및 상습절도혐의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으며....읏..."
"씨팔 뒈져버려!!!"
늘상 하던대로 미란다 원칙을 읊으며 나머지 한 쪽 손목에 마저 수갑을 채우려는데 예상치도 못한 범인의 행동에 혁의 얼굴에 큰 낭패가 서렸다. 주로 소매치기를 할 때 칼을 많이 썼던 범인이니만큼 칼이나 도구를 다루는 솜씨가 매우 능숙했고 그 칼을 지금 소지하고 있으리라는 것을 미리 예상하지 못한 제 불찰이었다. 게다가 크게 방심한 탓에 나머지 한 쪽 수갑을 자신의 손목에 채우게 되었고 따라서 상대방의 칼을 피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진 것이다. 제 멋대로 휙휙 휘둘리는 칼에 스친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아침부터 재수없게 비가 내리더라니 칼빵이나 맞으려고 이런 거였나. 묘하게 심기불편하고 어긋나기만 했던 하루가 떠오른다. 범인이 최후의 일격을 가하듯 온 힘을 다해 칼을 휘둘러 온다. 혁은 눈을 질끈 감았다.
"아아아악!!!!!!!"
비명을 지른다면 그것은 자신이 되어야 할 터인데 의외의 인물의 입에서 튀어나온 절규에 가까운 비명소리에 혁은 화들짝 놀라서 감았던 눈을 떴다. 그리고 혁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을 정도로 현재 자신의 앞에 펼쳐진 상황에 놀라고 있었다. 언제 풀렸는지 수갑은 이미 산산조각이 나있었고 범인의 손목은 인간의 형태가 아닌 것 마냥 기괴한 형태로 비틀어져 꺾여있었다. 눈물과 침으로 범벅이 된 범인이 더이상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바닥을 꿈틀거리는 모습을 보던 혁이 온 몸에 소름이 돋아 움찔했다. 그리고 그 앞에 서서 느긋하게 코트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로 범인을 내려다 보는 한 사내가 눈에 들어왔고 그가 누군지 알았을 때 혁의 표정은 더욱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뒤덮혔다.
"지금 당장 니 놈을 멸해버리고도 남음이나 그것을 원치 않는 이가 있어. 죗값을 내게 치르지 않게 된 걸 다행이라 여겨라."
신의 시선이 곧 우두커니 서 있는 혁에게 닿았다. 심하게 요동치는 눈동자가 무엇을 담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 그가 몹시 놀랐다는 것 하나만큼은 알 수 있었다. 신은 천천히 혁의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혁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쳤고 벽에 등이 닿고 나서야 스스로가 어떤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걸 인지했다. 강력계 저승사자라 불리더니 이젠 진짜 망자라도 눈에 보이는 것일까.
"당신, 정체가 뭡니까? 귀신입니까?"
"..."
이렇게 섣불리 모습을 드러내서는 안되는 것이었는데 그에게 혼란을 줘서는 안되는 것이었는데 신은 스스로를 책망했다. 하지만 혁의 목숨이 달린 일이었고 그렇기에 더욱 이성을 잃지 않을 수 없었다. 하고 많은 직업중에 왜 하필 형사인건지 예나 지금이나 제 몸 하나 제대로 돌보지 않고 막 쓰는 건 왜 하나 변하질 않는건지 속상한 마음과 분노가 공존했다. 그리고 여전히 피를 뚝뚝 쏟아내는 혁의 손에 자연스레 눈길이 간다. 겨우 진정됐던 화가 다시 치밀어오르고 눈앞이 깜깜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까득 이를 악 문 신이 다시 한 번 고개를 돌려 범인을 내려다 봤고 우두둑-소리와 함께 나머지 한 쪽 손마저 형편없이 비틀어진다. 크어억- 짐승의 앓는 소리가 다시금 들려오자 당황한 혁이 신의 팔을 붙들었다.
"그만해요. 미친겁니까?"
"저 자가 널 죽일 뻔했다. 널 다치게 했다. 내 하나뿐인 너를 바로 저 자가!!"
혁의 양 어깨를 꽉 쥔 신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분노가 치민 눈가가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평소 혁의 성격이라면 엎어치기를 하고도 남을 상황이건만 어째서인지 그 눈빛을 피할수도 손을 떨쳐낼 수도 없었다. 그래서는 안될 것만 같았다. 지독하게도 그리운, 너무나도 익숙한 온기가 혁의 몸을 감싸오는 듯 했다. 분명 자신은 이 얼굴을 이 눈빛을 알고 있다. 어째서인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서로를 마주한 눈동자가 일순이지만 따뜻한 빛으로 물들었다. 아주 오래 그리워한 연인들의 그것처럼.
"선배님!!!!! 선배님 괜찮으십니까?!!"
정적을 깬 목소리에 몽롱하게 번져나가던 눈동자가 제 빛으로 돌아왔다. 눈을 한 번 깜빡인 혁이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꺾는데 제 앞에 있어야 할, 방금까지 있었던 그가 사라지고 없다. 마치 신기루처럼 미미한 메밀꽃의 향기만 남긴 채로 완전히 모습을 감춰버렸다. 멍하니 서있는 혁의 곁으로 달려온 민재가 피흘리는 손을 부여잡고 많이 다치신거냐며 전전긍긍하는데도 혁은 그저 그가 떠난 빈자리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신사동눈치'의 몸상태를 보는 강력1팀의 형사들이 혁의 눈치를 봤다. 심지어 '귀..귀신이었습니다. 살려주세요!' 를 외치는 범인의 말에 더더욱 분위기는 냉랭해졌다. 다들 한데 입을 모아 숙덕거리는데 그 내용은 모두 한결같았다. '비오는 날 강력계 저승사자를 만났으니 별 수 없다.'는 것. 혁은 그런 시선들은 안중에도 두지 않고 자켓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의무실 좀."
"어 그래. 이형사. 처치하고 집에가서 쉬어. 마무리는 알아서 할테니까. 수고했어."
범인을 검거해서 돌아온 형사의 얼굴치곤 지독히도 기분이 편치 않음을 드러내는 표정탓에 강력1팀 모두가 숨소리조차 작게 내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메신저의 대화창이 이혁형사가 칼빵을 맞아서 돌았다더라, 범인을 불구로 만들었다더라 등의 내용으로 도배가 되었다. 그런 삭막한 분위기 속에서 팀장님께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이혁형사를 곁눈질로 쳐다보던 형사들의 눈에 안도감이 떠오른다.
상처를 붕대로 감아 마무리까지 다 하고나서도 혁은 의무실 베드에 앉아 고심했다. 유신재라는 사람을 조사해보았지만 그의 신분은 확실했다. 대표이사가 맞았고 귀신도 뭣도 아닌 사람임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아까 본 모든 장면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혹시 이 모든 것이 다 꿈인 것은 아닐까. 혁은 실컷 처치를 다 한 상처 위로 손톱을 세웠다.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의 고통에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다시 피가 베어 나온 붕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것은 꿈이 아니다.
혁은 그 날 밤새 지독한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꿈 속 모든 장면 속엔 그가 있고 본인이 있었다. 희끄무레한 달빛이 차창을 가르고 들어와 식은땀 가득한 혁의 창백한 낯빛을 비추었다. 무엇이 그리도 고통스러운 지 무엇이 그리도 애달픈 것인지 쉴새없이 눈물이 흘러내려 베갯잇을 축축히 적셨다.
'용서하십시오. 장렬히 죽는다 이제야 기별합니다.'
'사랑받았음에도 사랑하지 않았음을 용서해줘.'
'좋아서..모든 것이 완벽해서. 속도 없이..'
'니가 죽는 걸 원하지 않아..'
'어떤 시간 어떤 모습이든 행복하고.'
'비 많이 내리게 하지 말고...'
'부주의한 저승사자.'
헉! 외마디 비명과 함꼐 땀에 흥건히 젖은 채로 혁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손으로 마른 세수를 해보지만 아직도 꿈 속 장면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펼쳐져 있는 듯 했다. 꿈의 연장선 위에 서있는 듯 시리게도 아프게 쑤셔대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칠칠치못한 도깨비.."
언제부터인지 세차게 내리는 비가 쉴새없이 창문을 두드렸다. 비를 내리는 그 누군가의 마음이 그리움이란 고동으로 혁의 심장을 배회했다. 오랜 기다림을 담은 서글픈 눈물이 투둑, 툭 방울지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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