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할때마다 후회공 한 번씩은 다 파보는 거 아닌가요?....
나만 그런가봐..
참고로 칵테일바 사장님은 이수혁씨입니다. 이상하게 삼각관계로 이 분이 자꾸 떠오르네요. 섹시해서.
이런 느낌?..하악.
김신왕여
후회 上
적절히 장단을 맞춰주다가 구미가 당길 때 불러서 섹스를 하고, 욕구가 충족되면 또 고만고만한 관계. 항상 그 어느 누구든 이렇게 지내왔고 그것은 오랜 기간 친구로 지내왔던 여라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고3때 만나 시시콜콜한 대화상대로 지내다 우연을 빙자해 대학까지 같은 곳을 오게 되었던 것을 계기로 신과 여는 제법 오랜 기간을 함께 지내왔다. 그러다 우연히 여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된 후로 호기심 반 동정 반으로 시작된 이 관계는 그리 오래 가질 못하고 파국을 맞았다. 밤새 격렬했던 정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내비추듯 울긋불긋한 자국이 수놓아진 여의 몸을 무신경하게 내려다보던 신이 담배에 불을 붙이며 나지막이 읖조린다.
"그만하자. 우리."
베개에 볼을 파묻고 덤덤한 표정으로 엎드려 있던 여 역시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한다.
"그래."
끝을 알고 시작한 만남이었다. 그랬기에 언제 끝나도 이상하지 않을 관계라는 것을 여는 더욱이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의 손길을 그 목소리를 하루라도 더 일 분 일 초라도 더 느끼고 싶었던 것은 제 욕심이었을까. 어차피 헤어질 것이라면 최대한 덤덤하게.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이 여의 마지막 자존심이었고 끝까지 신을 너무나도 사랑한 자신의 어리석음이었다. 슬픔과 좌절에 사로잡힌 눈을 묻은 베개는 제법 훌륭한 위장이었다. 출렁이는 침대와 바스락거리며 옷을 입는 소리, 멀어지는 발자국 소리를 순차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여의 심장은 차차 바닥으로 추락했다. 곧이어 완전히 혼자 남겨진 방안에서 여는 한참을 울었다. 마치 세상이 끝나버릴 것처럼.
무던히도 덤덤했던 그 날 이후로 여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풍족하지 못했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늘 모든 것을 어깨에 지우는 삶이었다. 그랬기에 모든 것이 빠르기도 했다. 소위 말하는 철도 일찍 들었고 사춘기도 느낄 새 없이 빠르게 지나갔고,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알게 된 것 역시 빨랐다. 경멸하듯 저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시선을 등지고 홀로서기를 자처했다. 모든 것이 모자라기만 한 삶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있는 신을 만났다. 모든 것이 풍족하다못해 넘쳐흐르는 온 몸에서 빛이 나는 사람이었다. 뱁새가 황새를 쫓아가듯 여는 신에게 발톱만큼이라도 닿고 싶어 늘 주위를 맴돌았다. 무리인 것을 알면서도 같은 대학을 가고싶어 밤잠을 줄여가며 늘린 아르바이트로 몸이 천근만근으로 망가져도 그저 좋았다.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고 이야기를 나누는 그 모든 순간이 좋았다. 신은 여에게 있어 이 세상이고 우주 그 모든 것이었다.
짧은 시간일지라도 함께 했던 모든 순간이 소중했고 찬란했다. 그 조그마한 추억만으로도 살아가기에 충분할 것이라고 여는 어리석게도 그렇게 생각했다. 늘 준비를 해왔던 만큼 정리도 빨랐다. 섹스할 때만 찾았던 집이지만 신의 집 안에서 제 모든 흔적을 지워냈고 어차피 꿈도 뭣도 없이 들어갔던 대학은 자퇴서를 냈다. 어린 나이부터 아르바이트로 신세졌던 칵테일바는 사장 수혁의 배려로 정식채용되었다. 그렇게 5년이 흘렀고 점점 앙상하게 말라가는 몸만큼 머리도 심장도 물 기 하나없이 바짝 말라 비뜰어졌다. 사라진 우주에서 빛날 곳마저 잃은 별의 소리없는 아우성과도 같이.
"오늘은 일찍 들어가봐요."
"괜찮아요. 사장님."
"내가 안괜찮아서 그래."
수혁은 여의 머리카락을 헝클이다 까칠해진 볼을 특유의 긴 손가락으로 다정하게 문질렀다. 매년 시리도록 차가운 바람이 부는 이 맘때쯤이면 여가 힘들어하는 것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봐왔던 수혁이다. 그 누구에게도 곁을 쉬이 내주지 않는 목석같은 사내인 탓에 흔한 위로의 손짓 한 번 건네는 것이 이토록이나 어려웠다. 고리타분한 과거따위 떨쳐버리고 버러지만도 못한 새끼는 털어버리고 그만 자신에게로 기대오면 좋으련만. 수혁은 애써 언짢은 기분을 삼켜내고 성화에 못이겨 겨우 유니폼을 벗어내는 여의 뒷통수를 바라보았다.
첫 눈에 반했었다. 풋풋하게 교복을 입고 뻘쭘하게 이 가게를 들어섰던 그 하얀 첫 미소를 잊을 수가 없었다. 미성년자를 받을 수 없다며 한사코 거절하는 자신의 소매를 붙잡고 이 정도 페이가 아니면 굶어죽는다며 매달리던 초롱초롱한 눈동자. 생기있는 목소리. 타인이 모르는 그 밝디 밝은 시절의 여를 수혁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 잠깐 아파하는 그를 바라보는 것쯤은 괜찮다. 천천히 물을 주고 예쁘게 가꾸면 언젠가는 말라붙은 심장이 촉촉해지고 느릴지언정 자신을 돌아봐 줄 여유가 생길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기에 이 정도쯤은 감내할 수 있었다.
"죄송해요 늘."
"힘들 땐 언제든 기대라고 했을텐데 내가."
"감사합니다."
"말 나온 김에 안아줘?"
두 팔을 활짝 벌려 고개를 까딱하는 수혁에 겨우 여의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푸스스 바람빠지는 소리가 나자 그제서야 수혁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핀다. 꾸벅- 인사를 하고 뒷모습이 사라져갈 때까지도 올라간 입꼬리는 내려올 줄을 몰랐다.
터덜터덜 가게를 나오는 여의 발걸음이 무겁게 바닥을 짓누른다. 자신을 향한 수혁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고2때 집을 나온 이후로 쭉 의지해왔던, 어떻게 보면 가족과도 같은 사람. 힘들 때마다 늘 곁을 지켜준 것은 수혁이었다. 하지만 고마운 감정에 치우쳐 쉽게 손을 내밀고 기대어버리기에는 그 감정에 불순물이 너무나도 많아 여는 결코 그럴 수가 없었다. 마음 한 편으로는 수혁마저 잃게 되면 정말 저에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래서 수혁을 생각하면 항상 미안했고 미안하면서도 떠날 수가 없었다. 푹 숙인 고개가 머플러에 파묻히고 심란한 한숨이 공기를 메운다. 그 때였다. 가게를 빠져나와 골목 어귀를 도는데 갑자기 끌어당겨지는 완력에 반항할 새도 없이 이끌려간 여가 고꾸라질 뻔한 몸을 겨우 고쳐잡고 어정쩡하게 섰다.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려 고개를 들기도 전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여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오랜만이야. 왕여."
여의 고개가 천천히 들렸다. 멀끔하게 차려입은 수트와 단정한 행색이 대학때 마지막으로 봤던 신의 모습과 조금 상반되긴 하였지만 여전히 멋있었고 여전히 위험했고 여전히 그리운 향기가 났다. 이런 식의 갑작스러운 만남은 예상치도 못했던 것이라 여는 당황스러움에 입만 뻥긋거렸고 신은 끈덕지게 그런 여의 시선을 따라잡았다.
"그래, 오랜..만이야.."
자신이 생각해도 튀어나간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고 있어서, 아직까지도 신을 마주하면 미친듯이 쿵쾅대는 심장이 너무나도 비참해서 여는 괜히 시선을 사선으로 돌려 그 눈동자를 피했다.
"어떻게 지냈어?"
"보시다시피. 잘."
쭈뼛거리며 시선을 회피하는 여를 지그시 바라보던 신은 움켜쥔 손목을 위로 치켜들어 올렸다. 덕분에 말려올라간 소매 사이로 앙상하게 손목뼈가 드러나고 미간에 잔뜩 주름을 잡은 신이 반대쪽 손으로 여의 목덜미를 그러쥐고 끌어당겼다. 갑자기 훅 들어온 신의 행동에 화들짝 놀란 여가 있는 힘껏 어깨를 밀어 내며 손을 뿌리쳤다. 온기가 빠져나간 빈 손을 한 번 쥐었다 편 신이 나른하게 여에게 시선을 맞췄다.
"왜..왜이래? 미쳤어?"
"왜 이렇게 말랐어 너."
"그건 니가 상관할 바 아니잖아."
여는 한계였다. 더이상 이 곳에 서있다가는 마음 깊숙히 묻어놨던 그리움과 원망과 슬픔이 쏟아져나올 것만 같았다. 그것들은 신의 앞에서만큼은 절대로 내비추고 싶지 않은 것들이었다. 젖어드는 목소리를 애써 감추며 여는 마지막이길 바라는 마을으로 이별을 고했다. 우연히 마주쳐 인사는 했지만 썩 반갑지는 않으니 각자 갈 길을 가자고. 그것이 서로에게 좋을 것이라고. 여는 제 할 말만을 급하게 뱉어낸 채 빠르게 발걸음을 돌렸다. 하지만 몇 발자국 가지 못하고 허공에 퍼지는 목소리에 고스란히 두 다리를 붙잡히고 만다.
"그 때..왜 그렇게 도망갔어?"
도망..왜 도망갔냐고? 그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저렇게 염치없이 뻔뻔스럽게 질문을 하면 어떻게 대답을 해야하는 건지 여의 꽉 쥔 주먹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저 힘들었던 그리웠던 세월. 그 인고의 시간이 무색할 만큼 그 때와 단 하나도 변하지 않은 신의 이기적인 행동들과 이 상황들이 유리조각처럼 날카롭게 여의 심장을 후벼팠다.
"이제와 그게 중요해?"
"그래. 중요해."
"미안하지만 난 안중요해. 그냥 내 살 길 찾아 간 것 뿐이야. 그러니까 너도 니 인생 살아. 이제껏 그래왔듯이."
비수같이 뱉어져나오는 말들과는 상반되게 여의 얼굴은 곧 눈물을 쏟아낼 듯이 아슬아슬했다. 그 표정을 읽어내던 신은 새삼 깨달았다. 수 년전 그 때도 항상 곁에서 이런 표정이었던 너를 왜 몰라보았던 것일까. 늘 슬픔을 억누르고 감추고 꽁꽁 숨긴 채 웃기만 했던 너는 그 웃음 뒤로 얼마나 많은 아픔들이 겹겹이 쌓여갔던 것일까. 차갑게 내뱉는 내 모진 말에도, 집에 여자를 끌고 들어와 밤새 끈적하게 뒹구는 천박한 행동에도 늘 웃기만 했던 너였기에. 늘 뒤돌면 항상 있었던 너였기에 그 소중함을 미처 몰랐었던 제 어리석음에 신은 울컥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늘 주변에는 사람이 들끓었고 뻗어오는 손길도 주시하는 눈길도 지긋지긋하리만치 많았다. 어떤 것을 버려야 하고 어떤 마음을 간직해야하는 지 가르쳐주는 이는 그 누구도 없었다. 그저 감정이란 소모하면 그 뿐인 것이고 육체 또한 그에 따라오는 부수적인 것일 뿐. 그저 그런 삶에 지쳐가던 딱 그 맘 때쯤 만난 것이 여였다. 늘 적당한 거리를 벗어나지 않고 곁을 맴도는 새하얀 그 존재는 미약했지만 이상하게도 눈길이 갔다. 발에 채이는 많은 주변의 그저 그런 인간들 사이에서 그냥 약간 눈에 띄는 특이한 존재라고만 치부했다. 자신을 좋아한다는 그 감정을 손아귀에 쥐고 마음대로 휘둘러도 늘 곁에 있을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렇게 사라져버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마치 애초부터 자신의 세상 안에는 왕여라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먼지 한 톨, 흔적 한 톨을 남기지않고 왕여라는 존재는 완벽하게 그 세상에서 지워져 있었다. 미친 사람처럼 그를 찾아 다녔을 때에는 이미 너무나도 늦은 후였다. 그게 사랑이었던 것을 모르고 그렇게나 모질게 굴었던 자신이 경멸스러웠고 매일 밤 취하지 않고서는 잠들 수 없었다. 마치 죽어있는 사람처럼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몇 년이나 허송세월을 보냈고 신기루처럼 나타난 여의 모습에 신의 머릿속은 이미 포화상태였다.
"내 인생?"
"그래, 니 인생."
"그렇다면 기회를 줘. 내 인생을 살 기회를 줘. 널 되찾을..기회를 줘."
"갑자기 나타나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난.."
"찾아다녔어 너를. 니가 사라진 내 삶이 너무나도 하찮아서.. 보고싶었다..여야.."
자그마치 5년이었다. 여는 그 악몽같았던 시간을 다시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고 그럴 자신도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촉촉히 젖어드는 저 목소리에 이토록이나 흔들리는 자신이, 생기를 부여받은 듯 펄떡이는 심장이 너무나도 한심하게 느껴져 여는 눈을 꼬옥 감았다. 이제 겨우 너를 생각해도 눈물짓지 않게 되었는데 이제 겨우 술이 없어도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는데 저런 표정으로 저런 눈물로 이러는 게 어딨어. 이제와서 저런 비겁한 반칙이 어딨어. 제 손을 붙잡고 흐느끼는 신을 등진 채로 차마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는 여의 얼굴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누군가, 제발 누군가 이 상황에서 이 장소에서 자신을 좀 꺼내가 주었으면 뒤돌아 저 품으로 뛰어들지 않도록 누군가 좀 붙잡아줬으면. 간절한 애원을 듣기라도 한 것일까 구세주같은 목소리가 여를 에워쌌다.
"왕여씨. 아직도 안가고 여기서 뭐해요? 저 사람은 누구고?"
"아..이제 가려구요. 그냥 동창이에요."
"이리와요. 데려다 줄게."
위태위태한 몸을 혼자 내보낸 게 영 마음에 걸려 나와 본 것이 다행이었다. 저 멀리서도 한 눈에 보이는 여의 불안정한 모습이 그 옆의 사내가 누구인지 쉽사리 집작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수혁의 발걸음이 급해졌다. 눈물로 엉망이 된 여의 얼굴을 보자마자 수혁은 그 손을 잡아 끌어 어깨를 감싸안았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 다리가 떨리고 있었다. 겨우 안정을 찾은 여를 이 지경으로 만든 이의 얼굴에 주먹이라도 갈겨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여의 안정이 더 중요했다. 그에게서 멀어질수록 가쁜 숨을 힘겹게 몰아 쉬는 여의 등을 몇번이고 쓸어내리며 다독였다. 쉬이-쉬이- 괜찮아요.
수혁은 힐끗 뒤돌아 남겨진 남자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푹 숙여진 고개를 들지도 뒤쫓아오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 못박은 듯이 우뚝 서있었다.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수많은 회한과 탄식이 하얗게 뱉어지는 그의 입김과 함께 바스라진다. 당신에게는 자격이 없어. 여에 관한 그 무엇도 행할 자격이.
수혁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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