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혁은 전생을 기억해냈다기 보단..전생을 이해했어요.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해석하고 감상을 남기듯이 꿈을 통해 본 자신의 전생을 이해했다고 보시는 게 맞을 거 같아요. 엄연히 여는 여고 저승은 저승이며 혁은 혁일..것입니다 아마...
혁에게 작업거는 김신은 꼭 성격이 남과여의 기홍이 같네요..부들부들한 것이. 물론 의도한 건 아니었습니다만..
조금 슬프네요. 이것 역시 의도한 건 아니었습니다만..ㅠㅠ
김신이혁
다시 시작 03
혁은 꼬박 하루를 끙끙 앓았다. 형사 짬밥이 몇 년째인데 고작 칼부림 한 번에 몸도 아작나고 밤새 악몽에 시달리다니. 아, 뭐 꼭 칼부림때문만은 아닌가. 귀신인지 꿈에서 본 도깨비인지 정체를 명확히 알 수 없었던 한 사람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이 찝찝한 기분을 해결할 방법은 단 한 가지 밖에 없었다. 그를 찾아내어 만나는 것. 직접 눈으로 귀로 확인하는 것. 찌뿌둥한 어깨를 휘휘 돌리며 세면대 앞에 선 혁의 얼굴이 하룻밤 새에 꺼끌꺼끌했다. 거무틱틱하게 올라온 수염을 면도하며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다 퀭한 눈동자를 마주했다. 순간 자신과 같은 얼굴을 하고 초췌하게 무너져가던 곤룡포를 입은 사내의 눈동자가 겹친다. 삐- 경고음이 울리듯 머리 한 구석이 지끈거린다. 겨우 세면대에 팔을 짚고 선 혁은 관자놀이를 꾸욱 누르며 생각했다. 그를 만나는 것을 더이상 지체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마음이 급해졌다.
받은 명함도 있으니 다이렉트로 전화를 걸어볼까도 싶었지만 폰을 꺼내 통화버튼을 누르기 직전에 다시 명함은 주머니 속으로 되돌아갔다. 뭔가 석연치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침 비번이기도 하고 형사의 특기를 살려 그의 명함에 찍혀있는 회사 앞에서 잠복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1시간이 지나고 3시간이 지나고 수많은 사람이 왔다갔다 할 동안 그 인간은 코빼기도 보이질 않는데 날은 점점 어둑어둑해졌다. 추운날씨에 꼬옥 껴입은 패딩사이로 고개를 파묻고 지쳐갈 때 즈음 자연스럽게 들려오는 말소리에 혁은 또 자연스럽게 응한다.
"안추워요?"
"추워 죽겠습니다."
수 초간의 정적이 이어지고 화들짝 놀란 혁이 옆자리를 확인한다. 도대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타났는지 제 옆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앉아있는 이는 그토록이나 찾아다니던 '지금은 유신재'씨였다. 벙찐 얼굴로 입을 다물지 못하는 혁을 바라보던 그는 어색하게 어깨를 으쓱해보인다. 더이상 놀랄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매번 그것을 갱신해오는 눈 앞의 남자로 인해 혁의 머릿속이 정신없이 헤집어졌다.
"안물어요?"
"뭘 말입니까?"
"뭐든."
어떻게 차 안으로 들어왔어요. 어떻게 내가 여기 있는 걸 알았습니까. 당신은 나를 언제부터 알고 있었습니까. 그 날 밤 당신에게 단 하나뿐이라는 '나'는 대체 누구인 것이며 우린 도대체 무슨 사이였던 겁니까. 만나면 묻고 싶은 말들이 이렇게나 많았는데 막상 눈 앞에 나타난 이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그 모든 것이 부질없이 가루가 되어 흩어져버리고야 만다. 결국 그 수많은 질문들은 남겨둔 채 혁이 꺼내든 한 가지 질문은 그를 다소 당황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혹시..당신은 도깨비입니까?"
신의 눈빛이 순간 일렁이며 동요한다. 흔들리면서도 꼿꼿하게 혁을 주시하는 그 눈동자에 담긴 것이 어딘가 모르게 쓸쓸해보여서 또 몹시 그리운 것 같기도 해서 혁 역시도 붙잡힌 시선을 돌리지 못했다. 굳이 대답을 듣기 위해서 던진 질문은 아니었다. 직업 특성상 피의자들은 늘 발뺌을 하고 증거자료로 퍼즐을 맞추듯 상상력을 동원해야만 정답에 가까워지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니. 비록 꿈을 통해서이지만 증거자료도 있고, 지난 밤 직접 목격한 것도 있으니 도합해보자면 자신의 예상이 맞을 터였다. 이것은 형사의 감이기도 했다.
"기다려요."
잠시 앞 차창으로 시선을 돌려 한숨을 내쉬던 남자가 돌연 푸른 불꽃을 화르르 일으키며 모습을 감춘다. 도대체 무엇을 기다리라는 것인지, 사라진 본인을, 아니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가 있나? 모든 것이 꿈이었다는 듯이 남자가 사라져버린 빈 공간을 멍하니 바라보던 혁은 곧 철컥 소리와 함께 열리는 차문으로 인해 깜짝 놀라며 시선을 돌렸다. 너무 놀라 하마터면 클락션을 누를 뻔한 것을 겨우 진정시킨 혁의 시야에 에스코트하듯 한 팔을 들고 까딱 턱짓으로 내리라는 제스쳐를 취하는 남자가 있다. 도대체 뭘 얼마나 거창한 이야기를 하려고 바깥으로 불러내나 싶어 조금은 퉁명한 표정으로 내리는데 순간 기묘한 기분이 혁을 덮쳤다. 자신이 잠복을 하던 곳이 이렇게도 숲이 울창한 곳이었던가. 자신이 차를 세워두었던 곳이 이렇게도 한적하고 인적이 없는 곳이었나. 그제서야 댕그랗게 뜬 두 눈으로 주변을 휘휘 돌아 본다. 이리도 가보았다 저리도 가보았다 하며 주변을 확인하는 그 모습에 남자는 피식-웃음을 보냈고 혁은 그런 그의 앞에 다소 거친 발걸음으로 다가섰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여긴 어딥니까?!"
"잠시 자리를 옮긴 것 뿐이에요. 여긴 내 집이고."
"비밀을 은폐하기 위한 납치같은 겁니까?"
"그렇다면 잡혀갈까요?"
진지한 눈빛으로 뒷주머니에 걸린 수갑 쪽으로 손을 움직이는 혁을 향해 신은 손사레를 치며 유쾌하게 웃어제꼈다. -농담이에요- 뱉어지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사실 그 무엇도 믿을수 있을 만한 것이라곤 눈꼽만치도 없는 수상한 존재임에도 믿음이 갔다. 그 누구든 의심을 앞세워 대하고 돌다리는 두드려보고 건너는 신중한 성격의 혁에게 있어서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저 남자의 어떤 면이 그렇게 자신을 이끄는 것인지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마치 놀이동산에 있는 귀신의 집처럼 웅장하게 펼쳐진 커다란 대문은 오랜 짬밥의 형사도 주눅들게 할 만큼 음산했지만 지금에 와서 뒤로 물러날 수야 없는 노릇이 아니겠는가. 대문에 기대 자신이 들어오길 기다리고 선 남자의 얼굴을 한 번 쓰윽 쳐다 본 후 애써 담담한 척 가면을 쓰고 문을 들어섰다.
혁은 입이 절로 쩍 벌어졌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드높은 천장과 끝을 알 수 없는 반경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었다. 문득 얼마 전에 월세를 입금한 하꼬방만한 자신의 원룸이 떠올라 씁쓸한 침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대표이사라더니 진짜 재벌들은 다 이런 집에 사는 것인가. 이 얼마나 불공평한 세상인 것인가. 튀어나오는 억울함을 꾸욱 밀어넣으며 남자가 내미는 커피잔을 받아들었다.
"혼자 삽니까? 이 넓은 집에?"
"왜요? 같이 살아줄래요?"
이제는 제법 적응된 남자의 실없는 농담을 받아넘기며 혁은 어이없다는 듯 웃어 보였다. 커피를 홀짝이며 오래 되어 삐그덕거리는 마루며 옛 양식의 몰딩을 두리번거리기도 하고 벽 한 면을 커다랗게 차지한 작가미상의 예술작품을 신기한 듯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려보기도 했다. 호기심 가득한 어린 아이의 눈으로, 들뜬 발걸음으로 집의 이 곳 저 곳을 휘젓고 다니는 혁의 뒷통수를 바라보는 신의 얼굴에 못말린다는 듯 웃음이 걸렸다. 그러다 어느 한 지점에서 자석에 이끌리듯 혁의 발걸음이 멈춰선다. 그것은 저택의 제일 끝 방에 존재하는, 누군가에게는 과거이고 누군가에는 아픈 현실이기도 한 방문이었다. 혁은 이상하리만치 익숙한 그 방 앞에 두 다리를 붙잡혔다. 마치 매일 밤 열고 닫는 제 방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방문 손잡이에 손을 올려두고서 차마 그문을 열어재끼지는 못한 채 망설이고 또 망설이는 것을 반복하다 결국 포기하고서 몸을 돌렸다. 뒤를 따르던 신의 눈동자가 쓸쓸하게 침잠해있다.
"꿈을 꾸었습니다. 날이 적당한 어느 날, 나와 같은 얼굴을 한 남자가 내가 선 지금 이 자리에서 당신에게 말하더군요. 비 많이 내리게 하지 말라고. 이 말을 던진 남자와 당신은 어떤 관계였던 겁니까?"
"그건 형사님도 이미 알고 있지 않나?"
남자의 말이 맞았다. 대충은 아니,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미 충분히 이해했고 숙지했다. 다만 어차피 정답일 그 진실을 그의 입을 통해 다시 한 번 확답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질문에 대한 답을 독촉하듯 꾹 입술을 다문 채 혁은 남자를 똑바로 주시했다. 그 눈빛을 받아들이던 남자의 눈동자가 사선으로 길게 늘어지고 그것에 어떠한 감정이 묻어나오려할 때 즈음 그의 입이 열린다.
"비고 천둥이고 물이자 바람이고..."
"..."
"해사한 첫눈이었다가 화사하게 웃는 꽃이었다가.."
"..."
"내 온 숨결이고 내 온 세상이자 곧 내 모든 것이었어. 나에게 너는."
사실은 억수같이 비가 내리던 그 날 처음 마주했을 때부터 일순이지만 온 몸을 그에게 내던지고 싶은 착각이 들었다. 쏟아지는 폭포수처럼, 포근히 쌓이는 하이얀 눈처럼 중력을 거스르고 순리를 거스르고 그저 이 한 몸 온전히 그에게 내던지면 그것이 또 하나의 세상이 되고 또 하나의 만물이 될 것만 같았다. 태어나 그 누구에게도 온전히 자신을 내보인 적이 없었고 마치 이 세상에 혼자 동떨어진 것 처럼 늘 이 세상은 외로웠고 차가웠다. 그런 메마른 자신의 삶에 툭 떨어진 불덩이는 감당하지 못할 만큼 뜨겁고 목말라서 머릿속을 새카맣게 태워버렸지만 그래도 그리움이고 그러함에도 애달픔이라 혁은 완연히 그 불덩이를 끌어안기로 했다.
"얼마나 오래 기다린 겁니까..?
"...."
신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가 없는 삶은 단 하루도 단 1초도 세아리는 것이 무의미했으므로. 왕여가 없는 이 세계는 김신에게 있어 그 무엇도 완전할 수 없는 물질들로 가득찬 허황됨이었으므로. '기다림'이라는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기나긴 숨막힘은 신의 매일을 옥죄었지만 그래도 혁을 만났으니 그를 찾았으니 되었다고 신은 몇 번이고 듣고 있는지도 알 수 없는 하늘에게 무릎 꿇었다.
후두둑 급하게 쏟아지는 빗방울 소리와 함께 신의 얼굴에도 서글픈 비가 내렸다. 수많은 이별 속에 이제는 무던히 업이라 여길 때도 되었다고, 정인을 향한 애타는 마음 또한 그 업의 일부일 것이라고 되뇌어왔건만 얼굴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그 다짐은 쉽게도 무너지고야 만다. 혁의 손이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신의 뺨에 가 닿았다. 손이 닿자마자 그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고 점점 더 그 들썩임은 격분하듯 흔들렸다. 크흡- 결국 그 슬픔을 다 삼켜내지 못한 그릇은 오롯이 고통을 토해내고야 만다. 푹 숙여진 고개로 그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일까. 혁은 그를 향해 뻗은 손 마디마디로 스며드는 그 슬픔을 온전히 받아낸다.
신은 제 뺨에 와 닿은 혁의 손등 위로 제 손을 겹쳤다. 손바닥에 입술을 묻고 그리운 향기를 흠뻑 취한다. 들숨과 날숨 그 모든 숨결이 그리움의 향으로 점철되고 신은 좀 더 깊이 그것을 들이마시고 싶어졌다. 그 무엇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태풍의 눈 사이에 선 신은 혁의 뒷목을 부드럽게 에워싸 품 속으로 그러들였다. 얼떨결에 이끌려온 그의 목덜미와 어깨 사이로 얼굴을 묻고 크게 숨을 들이 쉬었다. 움찔하는 혁의 허리를 매달리듯이 감싸안았다. 그런 신의 모습이 마치 어린 아이같기도 해서 동정인지 연민인지 아니면 사랑일지도 모르는 감정 속에서 혁은 조심스레 그의 허리에 손을 올려 마주 안았다. 들썩이는 어깨가 떨리는 세포들이 고스란히 전달되고 혁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전생의 나는 이런 미래의 모습을 희망하며 이 남자를 떠났던 것일까. 전생의 나를 떠나 보내던 덤덤한 당신의 눈빛 속에 담긴 진실은 제발 자신을 혼자 두고 떠나지 말라는 애원이었을까. 아니면 원망이었을까. 감긴 두 눈으로 전달된 슬픔이 투둑-툭- 방울지어 흘러내린다. 이번 생에서의 슬픔과 아픔은 모조리 내가 가져갈 테니 다시 남겨질 날이 적당할 그 어느 날의 당신은 웃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혁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어느새 점점 더 거세게 휘몰아치는 비바람 소리는 두 사람의 설움과 애통함을 흔적도 없이 잡아 먹고 있었다. 마치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래왔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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