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음성이 선연하게 귓가를 파고들었다. 사내는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길을 걷고 또 걸었다. 굵고 드센 빗방울에 땅바닥에 흩뿌려진 피가 빠르게 씻겨 내려가고 있었지만 뛰어난 신체와 인간의 몇 배에 달하는 오감의 발달로 최고의 추격자라 칭해지는 그들 늑대에게 있어서 고작 300미터 바깥에 있는 사냥감은 놓칠래야 놓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빛 한 점 없는 까무룩한 하늘이 드리우는 으슥한 산중에서 두 존재는 서로를 집어삼킬 듯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눅눅한 공기를 타고 차가운 피 냄새가 진동을 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가까워질수록 빛나는 두 눈동자가 시퍼런 날을 세웠다. 입가를 적시는 물기가 거추장스러워 손등으로 훔쳐낼 때 즈음 홀쭉하게 쪼그라든 동물의 사체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제 형체를 잃은지 오래였다. 검붉은 피와 덕지덕지 붙은 살점이 짓이겨져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신은 단번에 그것을 알아보았다. 일주일전만 해도 제 동료였을 녀석의 것이라는 걸. 우뚝 신의 발걸음이 멈춰섰다. 나무기둥에 기대 선 시커먼 실루엣이 천천히 정체를 드러냈다. 그 창백한 낯짝이 쓸데없이 고아한 달빛을 닮아서 보름달이 뜬 것도 아닌데도 온 숨을 옥죄이는 것 같았다.
"오랜만이야. 김신."
"이게 무슨 짓이야?"
저벅, 저벅. 세찬 빗소리에도 묻히는 법 없이 제 존재를 여과없이 드러내며 발자국 소리가 울려퍼졌다. 어느새 코 앞까지 다가온 서늘하고 또 붉기도 한 존재가 천천히 신의 얼굴게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것이 쉬이 허용될 리가 없었다. 신은 단번에 그 가느다란 모가지를 움켜쥐고 좀 전까지 그가 기대어 서있던 나무기둥까지 단숨에 밀어부쳤다. 쿵- 소리와 함께 비를 피해 나뭇가지에 잠시 숨은 새들이 푸덕이며 흩어졌다. 주변을 에워싼 텁텁한 위압감에도 밀쳐진 사내는 눈 하나를 꿈적할 줄 모르고 되려 입꼬리를 비죽이며 올려댔다.
"글쎄, 쓸만한 새끼가 없잖아."
"고작 열 여섯이야."
"알아."
"왕여!!"
이래야만 오잖아. 김신 네가. 여전히 타닥 타닥 쏟아지는 규칙적인 빗소리에 신의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틈 없이 구겨진 미간 가로 원망인지 무엇인지 의미모를 눈동자가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리고 있었다. 오래전 그 언젠가는 누군가를 위한 소나타였던 빗소리가 이제는 넝쿨처럼 옭아드는 소리로 바뀌어 주변을 맴돈다. 고작 한 발자국, 목을 쥔 손에 흩뿌려지는 뜨끈한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로 이렇게나 가까이 있는데도 둘 사이에는 절대로 메워지지 않을 미세한 틈이 존재한다는 것을 신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이제는 더 차가워질 곳도 없는 여의 냉랭한 손이 제 목을 감싼 신의 손을 겹쳐잡았다. 신은 늘 생채기를 내고 있는 건 자신이면서도 꼭 스스로가 갈가리 찢기고 있는 것처럼 상처받은 눈을 했다. 그러니까 이제 그만.. 이제는 제발..
"나를 죽여.."
"......:
"그것도 아니라면.."
"......"
"나를 안아줘.."
영영 이어지지 않을..프롤로그라고 쓰고 조각이라고 읽는........나는 어차피 틀린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