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깹사파느라 기가 빨리는 매일인 것 같습니다....
뭔가 능글연하김신에 휘둘리는 왕여가 보고싶었을 뿐...네....
김신왕여
스폰서上
몇 번의 비탈길을 굽이굽이 꺾어 들어가고서야 펼쳐진 광활한 풀숲사이로 이내 웅장한 별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쁜 스케쥴 탓에 벤에서 쪽잠을 자며 왔던 터라 신경이 날카로워진 신은 자켓 가슴께를 더듬어 담뱃갑을 찾았다. 톡톡-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담배를 한 개비 베어 물며 한 손으로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매만졌다. 그제서야 비 갠 후의 쓸데없이 화창한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후- 뿜어지는 담배연기가 별장 위로 걸린 구름과 함께 수채화같이 얽혀들었다.
"이 쪽으로 오시죠."
마지막 담배 한 모금을 더 깊이 빨아들인 후 대충 발로 짓이겨 낸 신이 비서로 보이는 중년의 사내를 따라나섰다. 끼익-오래 된 듯한 묵직한 문이 열리자 책들이 많이 진열된 서재에서나 날 법한 나무향이 코를 자극한다. 온갖 목제공예품이 가즉한 장식장이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벽에 걸린 커라단 사슴뿔장식까지 눈에 들어오자 신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 별장의 주인은 역시나 죽기 전에 노망난, 그것도 취미가 아주 고약한 영감탱이일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사내를 따라 모퉁이를 돌자 무슨 해리포터에나 나올 법한 기나긴 식탁이 신을 맞이했다. 아- 정말이지 참아넘기기 힘든 취미다.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주십시오. 이사님을 모셔오겠습니다."
신은 대충 고개만 까딱여 보인 후 의자 대신 그 기나긴 식탁 위에 기대앉는 것을 선택했다. 몹쓸 호기심에 여기까지 걸어 들어오게 된 자신이 한심스러워 다시 한 번 지끈거리는 머리를 꾸욱 누르며 눈을 감았다. 몇 분의 시간이 지났을까, 멀리서 두 사람의 발자국소리가 삐그덕 나뭇바닥 소리와 함께 울려퍼졌다.
아- 적어도 휠체어 탄 노친네는 아닌가보군. 신은 천천히 시선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세상은 정지했다. 이 넓은 공간 안에 마치 그만이 숨쉬고 있는 것처럼. 눈꽃같이 하얀 피부, 은하단을 품은 듯한 눈동자, 창가에 새어나오는 태양을 머금은 더없이 반짝이는 금빛 머리칼.. 어느 것하나 신비롭지 않은 게 없었고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다. 심장이 턱 내려앉았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왕여라고 합니다."
단정하게 악수를 청하는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신은 맛을 음미하듯 느릿하게 그 손가락을 에워쌌다. 단지 손을 한 번 잡았을 뿐인데 술에 취한 듯 황홀한 기분이 전신을 관통했다.
"김신이라고 합니다. 이미 아실테지만."
인사를 나누는 것을 확인한 비서로 보이는 중년의 사내는 가벼운 목례와 함께 조용히 자리를 벗어났다. 두 사람은 어색한 사이만큼이나 기나긴 아까의 그 괴상하기 짝이 없던 식탁에 마주보고 앉았다. 서걱서걱 스테이크 써는 소리와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만이 정적속을 배회하고 있었다.
신은 몇 번 칼질을 하다 여를 유심하게 관찰했다. 티끌 하나 없는 하얀 셔츠, 단정하게 말아 올린 소매의 주름, 그 사이로 움직일 때마다 설핏 보이는 투명한 속살, 하나하나 찬찬히 뜯어 보는 신의 표정은 꾀나 즐거워 보였다. 특히나 노골적인 제 시선을 느끼면서도 눈을 맞추지 못하고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이나 붉게 물든 눈가는 너무도 색정적이라 묘한 가학심을 불러일으켰다. 신의 얼굴에 익살스런 소년의 미소가 피어오른다.
"나랑 자고싶어요?"
챙-고요함을 깨뜨리는 나이프 소리가 요란스럽다. 당황한 손가락이 공중을 몇 번 헤매이다 겨우 자리를 잡는다. 여의 눈은 커질 대로 커진 채였다. 이건 또 무슨 순진한 반응인가 싶어 신은 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으며 말을 이었다.
"왜 그렇게 놀라요? 컨셉인가?"
그렇게 열렬하게 컨택해오셨던 분은 다른 분인가. 덧붙이는 말에 여의 눈동자가 심하게 요동친다. 버얼겋게 달아오른 귓볼이 여의 흰 피부를 더욱 도드라져보이게 했다. 명색이 그룹의 후계자씩이나 되는 사람이 사업가다운 냉철함도 철두철미함도 그 어느 것 하나 가지고 있지 않은 것 처럼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요즘은 사업도 얼굴로 하나, 신은 그 사소한 행동들을 놓치지 않고 더 진득하게 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여는 몇 번 입술을 달싹이다 드디어 결심이 선 듯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단지, 단지..식사를 함께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같은 사내와의 식사 한 두번을 위해 수 억의 돈을 쏟아 붓는 멍청한 사업가는 없죠. 상식적으로."
"제가 한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친구가 없어요..그래서..가끔 이렇게.."
"그렇다면 협상결렬입니다. 소꿉놀이나 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아서."
신은 여의 말꼬리를 보기좋게 잘라내며 몸을 일으켰다. 드르륵- 의자가 나뭇바닥을 긁는 소리가 조용한 공간을 유독 큰 소리로 메워온다. 여는 죄없는 입술만 꼬옥 깨물었다. 신은 걸어다니는 중소기업이라는 평이 있을 정도로 이미 국내에서 익히 알려진 스타였다. 돈과 명예 그 어느 것 하나 부족함 없는 사람이란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더욱 만날 수 있는 명분이 없었고, 스폰서라는 이런 어처구니 없는 결과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여에게 잠시 시선을 두었다가 더 볼 일이 없다는 듯 걸음을 옮겼다. 사실 여가 제 취향인 것은 명백했고 마음이 동한 것도 맞지만, 앞뒤 생각없이 달려들 정도로 철없는 나이도 아닐 뿐더러 직업관계상 이런 너저분하고 애매한 관계는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신은 대충 주머니에 손을 찔러놓고 유려하게 그 곳을 벗어나 현관으로 향했다.
"자..잠시만요."
신은 갑자기 제 팔목을 붙드는 여로 인해 다소 놀란 눈으로 뒤돌았다. 급하게 쫓아나왔는 지 그 붉은 입술에서 밭은 숨이 연신 새어나왔다.
"기분을 상하게 하려던 건 정말 아닙니다. 정말 오래..오랜시간동안 김신씨 팬입니다. 정말이에요."
믿어달라 호소하는 여의 눈을 신은 피하지 않고 올곧게 받아들였다. 아무 말 없이 바라만 보는 신의 태도에 불안함을 느낀 건지 붉어진 눈가에 미세한 경련이 인다. 자신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것일까 이 사람은. 신은 의아함을 품으며 탄식어린 한숨을 길게 내뿜었다. 놓치기라도 할 새라 꼬옥 제 팔을 움켜진 여의 손을 조심스럽게 떼어내자 곧바로 실망한 기색을 여과없이 내보인다.
"원하시는 조건이라도 있으신거면 맞출게요 그러니까.."
여는 습관처럼 그 붉고 도톰한 입술을 꼬옥 깨문 채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덕에 셔츠 깃 사이로 숨어 있던 목덜미가 설핏 드러나 신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지금 당장 저 셔츠를 젖히고 뽀얀 속살에 입술을 묻으면 어떤 기분일까. 풋풋한 살내음이 온 신경을 자극한다. 머리가 뜨거워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다. 신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여의 뒷목을 감싸쥐었다. 생각지 못한 행동에 깜짝 놀란 여가 고개를 반사적으로 치켜들었다. 눈가가 촉촉했다. 신에게 더이상의 인내심은 남아있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게 뭘 줄 알고."
신은 거칠게 여의 뒷목을 끌어당겼다. 입술이 닿는 순간 눈을 크게 뜬 여가 밀어내려 신의 팔을 다잡았지만 오히려 자극을 받은 듯 더 깊고 거칠게 파고든다. 몸 전체가 뜨거워져 다리가 후들거렸다. 신은 뒤로 몸을 빼려는 여의 허리를 끌어당겨 벽으로 밀어붙였다. 쿵-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몸이 흔들렸다. 허겁지겁 걸신들린 듯이 타액을 빨아들이는 통에 적나라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여의 귓바퀴며 목덜미가 버얼겋게 달아올랐다. 으응-자신에 입에서 나온 것이라곤 믿을 수 없을만큼 야살스러운 신음소리에 여는 수치심에 눈을 질끈 감았다. 신의 입술이 떨어졌다.
"자, 이제 당신이 대답할 차례야. 내가 원하는 거, 맞춰줄 수 있겠어요?"
아직 채 가시지 않은 흥분으로 색색 숨을 고르던 여의 두 볼이 마치 수줍은 소녀처럼 붉게 물들었다. 그것이 안도인지, 후회인지 알 수 없을 긴 숨을 내뱉으며, 신의 가슴께로 여의 이마가 콩- 떨어졌다. 식지 않은 열기가 스며든다. 간지럽고도 한없이 달콤했다. 맞닿은 심장이 쿵쿵- 가볍게 뜀박질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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