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어서 완결내고 싶은데...진도가........10회이내의 완결을 목표삼고 있습니다....
김신왕여
세상끝까지 08
것봐요. 아니까 좋잖아요. 파스스 흩어지는 미소가 창문을 비추는 달빛에 섞여든다. 언제부터였는지 어떻게 시작된 감정인지에 대한 질문도 그 미소 하나에 녹아들어 더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버렸다. 신은 자신이 늘 여를 지켜주고싶다고 그 상처를 보듬어주고싶다고 생각해왔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오히려 자신이 여로부터 상처를 치유받고 있었다. 차갑던 심장을 따뜻하게 녹여준 것도 인간다운 삶을 알게 해준 것도 그 모두가 다 찬란하게 빛나던 여의 손을 맞잡은 것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축복이었다. 곁에 있는 것 만으로도 이미 여는 신에게 있어 빛이고 구원이다. 신은 여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꼬옥 그를 그러안았다. 그 품이 너무나도 소중하고 또 애틋해서, 바스라질 것처럼 아슬해서.
발을 다치기도 했고 못난 자신 때문에 눈물을 쏟기도 했고 그로 인해 추욱 늘어진 지친 여의 몸을 침대에 눕히고는 도톰한 이불을 덮어주었다. 지쳤을 텐데 푹 쉬어- 다정하게 건네는 목소리에 여가 다급하게 손을 뻗어 신을 붙잡는다. 나 잠들때까지 옆에 있어주세요- 아이같이 매달려오는 통에 신은 머리에 팔을 괴고 조용히 여의 옆에 같이 누워 그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형 진짜 떠날거에요?"
"그럴 생각이야."
"그럼 이제 안와요?"
촉촉하게 젖은 목소리가 떨려오고 거기서 느껴지는 불안함이 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만 같아서 신은 소리없이 쓸쓸히 웃었다. 이렇게 서로 마음이 맞닿아있는데도 자신에 대한 믿음이 이렇게도 없어서야. 왜 내가 떠나는 그 어떤 길에 당연하게도 니가 없다는 전제를 깔고 생각하는 거냐 따져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멍하니 천장을 향해 꿈뻑이는 새까만 눈동자가 처연해서 차마 그러지를 못했다. 대화가 부족했고 그것이 여를 불안하게 했다. 모든 것이 제탓인 것 같아 미안함에 여의 앞머리를부드럽게 쓸어넘기며 달래듯이 어루만졌다. 그러자 곧 울 것 같은 눈으로 연락끊으면 저주할거에요. 1년에 한 번씩이라도 나 보러 오면 안돼요? 여전히 시선은 천장을 향한 채 웅얼거린다.
"지금 나 말려죽일 일 있어?"
그제서야 지독스레 천장만을 향하던 고개를 신쪽으로 돌린다. 제 머리를 쓸어넘기는 신의 손을 부여잡고 무슨 뜻이냐는 듯 빠안히 바라본다. 1년에 한 번도 못보러오냐는 불만섞인 행동이기도 했다. 신은 난감하다는 듯 긴 한숨을 뱉어냈다. 동시에 여의 입술이 삐쭉 튀어나온다. 항상 어른스럽고 대나무같이 곧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럴 때보니 영락없는 어린애인지라 그 갭이 참을 수 없이 귀엽게 느껴져 신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린다.
"사랑하는 사람을 1년에 한 번만 보고 살라는 건 뭐야? 너 나 밉다고 고문하는거야?"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래서 말인데.."
신이 여의 말을 끊어내고 오랜 시간 고민해왔던 문제를 꺼내들 준비를 했다. 여는 신의 입에서 튀어나온 '사랑' 이라는 단어에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던 것도 잠시, 곧 말하기를 멈추고 한참을 뜸을 들이는 신에 왠지 모르게 불안해져 바짝 말라오는 입술을 달싹였다. 곧 큰 결심을 한 듯 신의 눈동자가 선명하게 빛났다.
"너에게 있어 예민한 문제라는 걸 알아. 나에겐 용기이자 욕심이고 너에겐 강요가 될 수도 있겠지."
"대체 뭔데 그래요."
"우선 첫 번째는 니가 나와 함께 가줬으면 좋겠어."
여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사실 신의 옆에 항상 함께 있고싶다고 생각을 해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상황이나 형편이 그렇게 해주지 않을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었기에 애초에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늘 한 뼘만한 작은 공간에 갇혀 사는 자신에게 있어서, 당장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조차 벗어날 생각을 못하는 자신에게 있어서 한국을 떠난다는 것은 그야말로 모험이자 꿈에서나 있을 법한 일인지라 여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 첫 번째가 있다는 것은 두 번째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여는 다시 신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두 번째는 니 눈에 관해서야."
신은 겉으로는 신사처럼 여를 배려하며 여유로운 듯 보였지만 사실 속은 영 그렇지를 못했다. 신은 여에게 한해 한없이 다정한 사내였지만 그에 앞서 냉철한 사업가이고 조직의 잔혹한 수장이기도 했다. 당장 첫 번째를 제시했을 때부터 이미 만약에 거절을 당할 경우나 기타 다른 모든 상황을 고려하고 계산을 해보았었다. 한국에 계속 남아있을 여건은 안되고 그렇다고 거절당했다고 해서 여를 놓을 생각은 없었다. 최후의 보루로 정말 납치라도 해야하나, 거기까지 생각했다는 것을 알면 여가 어떻게 생각할 지 퍽 난감한 부분이었다.
여의 눈에 대한 문제는 여를 위함이기도 했지만 신의 욕심도 그만큼 비중을 차지했다. 이 문제는 여가 긍정적인 대답을 하고 같이 외국으로 떠났을 경우에 더욱 그러하였다. 당장 100평이내의 공간에서도 여는 힘겨워한다. 한국을 벗어나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을 외국으로 갔을 때 사무치는 외로움으로 여가 병들어가길 원하지 않는다. 눈을 잃기 전 학창시절의 좀 더 제멋대로에 좀 더 어리광을 피울 줄 알았던, 자신이 하고싶었던 것을 꿈꿀 수 있는 그런 여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수술할 수 있다는 것도 실패의 가능성에 관한 것도 그 모든 것을 차근히 설명들은 여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긍정도 부정도 취하질 않는 여로 인해 이야기를 꺼내면서도 이야기가 끝난 지금도 신의 심장은 천국과 지옥을 오가고 있었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채근하고 싶지는 않아서 슬며시 여의 손가락에 깍지를 끼우며 읊조렸다.
"그냥 그렇다는 거야. 니 결정에 따를 테니까-"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여의 손가락 마디마디 핏줄 하나하나를 새겨넣고 외워갈 때 즈음에서야 마주 쥔 그 손가락에 힘이 들어간다. 꽤 평안하게 기다렸다고 생각했는데 얼마나 긴장을 했던건지 꼭 맞잡아오는 손가락에 땀이 베어나왔고, 그런 자신이 생소하고 한심한 기분에 자조섞인 웃음이 나왔다. 꿈뻑이던 까만 눈동자가 시선을 고정하고 숨결을 고르며 입을 달싹인다. 차마 마주하지 못한 신의 동공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천천히 옆으로 돌아누어 신을 마주보던 여가 그의 몸을 더듬어 허리께에 팔을 두르며 안겨온다.
"아무리 생각해도.."
"..."
"형은 내 수호신인가봐요."
허리를 더욱 세게 꼬옥 끌어안고 신의 가슴에 얼굴을 묻는다.
"이런 나라도 괜찮다면, 형 옆에 있고싶어요."
인생에 있어서 이것은 아주 큰 변화이고 그것이 여 스스로에게 있어 약이 될지 독이 될지 알 수가 없는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는 그 모험이라는 것을 해보기로 결심한다. 어차피 인생을 통틀어 신을 만난 것 자체가 기적이자 행운이었다. 더이상의 기적은 바라지도 않고 필요치도 않았다. 단지 지금 당장 단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 어떤 모습으로라도 신이 가는 그 길 옆에 자신이 작게나마 존재했으면 좋겠다는 것, 그것 뿐이었다. 수만가지 부정적인 이유가 쏟아져나오지만 지금 이렇게 따스한 품을 내어주는 김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것들은 모두 먼지가 되어 날아가 버리고 만다.
"바보야. 그 반대지. 나는 니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떳떳하지 못한 사람이야. 이런 나라도 괜찮다면 내 곁에 있어주겠어?"
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제 품을 파고드는 여의 굽슬한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었다. 정수리에 입을 맞추며 마주 안은 손에 힘을 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손을 놓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과 맹세를 되새기고 또 되새긴다. 깊어가는 새벽녘까지 뒤척이며 잠 못 이루는 여의 얼굴이며 품을 몇 번이고 어루만지며 달빛 아래 숨어 사랑의 밀어라도 속삭이듯 둘의 속삭임은 멈출 줄 몰랐다. 너 처음 눈뜨고 내 얼굴 못생겼다고 도망가는 거 아냐? 장난스레 물으니 형이야말로 나 귀찮다고 버려서 국제미아 만들지나 말아요- 되받아쳐옴에 신은 새벽인 것도 잊고 소리내어 웃음을 터뜨린다. 언제 들어도 듣기 좋은 그 목소리에 여의 표정이 나른하게 풀어진다.
"어떡하지.. 형이 너무 좋아요. 그래서 너무 겁나."
어슷 휘영청 비추는 달빛에 반사된 여의 눈동자에 언뜻 쓸쓸함과 두려움이 떠오른다. 살면서 수많은 것들을 잃어왔고 그랬기에 그것이 무엇이든 갖지 않으려, 품지 않으려 노력한 삶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달음에 가슴 속에 뛰어들어온 김신이라는 존재는 여에게 있어 생경한 파동이기도 했지만 언제 터져 사라져버릴 지도 모르는 물방울같기도 해서 불안하고 또 두려운 것이기도 했다. 소회를 털어놓는 여의 목소리가 한없이 떨렸다. 그 떨림이 스산하게 신의 마음으로 스며들어와 시리게도 그 속을 헤집어 놓는다.
"니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것을 느끼든 그것보다 내가 더 많이."
당신의 모든 것이 사랑스러워, 내뱉어지는 숨결 하나하나가 날 살아 숨쉬게 해.
"..."
"그러니까 너는 그저 이 손을 잡아."
그러니 거친 파도에도 흔들리거나 집어 삼키어지지 않도록 부디 이 손 놓지 않기를.
*
신과 도영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어보였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척척 진행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박사장은 예상대로 주식을 70%대까지 매입하였고 도영은 타이밍 좋게 각종 찌라시를 흘렸다. '유신의 몰락' '유신의 새 주인' 등 각종 자극적인 제목들로 뽑아진 찌라시들은 주식시장에 흔히 떠도는 수준의 것에 불과했지만 겨우 이 정도의 물밑작업에도 박사장을 완전히 함락시키기에는 충분했다. 게다가 아주 오래 전부터 유신에 숨어들어와있던 쥐새끼들에게도 마침 딱 좋은 먹잇감을 던져준 참이다.
"별다른 의심은 없었나?"
"네, 녀석들이 서류를 들고 회사를 벗어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 서류는 일전에 도영이 들고있었던 서류들로 오랜 세월 축적되어 온 유신의 비자금에 관련된 것들이었다. 지금의 신의 대까지와서는 정경유착의 고리가 거의 끊기고 없다고 하지만 과거의 유신은 달랐다. 선대의 선대까지도 이어지는 그 비자금 명단이 세상에 알려지는 날이면 정계와 사회 문화 교육계 등 곳곳에 큰 혼란을 야기시킬 것임이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신의 조직에까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중대한 일이기도 했다. 물론, 그것이 제대로 된 비자금 명단이었을 경우에 한해서지만.
지금쯤이면 박사장은 평안한 얼굴로 자신의 심복들이 건네는 그 서류를 받아들었을 것이다. 꽤나 자신만만하고 거만한 표정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 봉투를 열고 내용을 접하는 순간 변해가는 그의 표정은 어떤 것일까. 신은 문득 그 표정이 궁금해졌다. 천천히 입꼬리를 올리는 신의 손에는 그들에게 보낸 것과 똑같은 내용의 서류가 들려있었다. 김신의 흔적이 모조리 지워지고 없는, 박사장의 이름으로 도배된 690억원어치의 리스트가. 그리고 내일이면 유신이라는 그룹의 파산선고로 세상이 떠들석할 것이고 상장폐지되어 휴짓조각으로 변해버린 주식을 손에 든 박사장은 파멸로 치닫을 것이다.
"곧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오겠군. 환영인사를 준비해."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환영인사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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