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 완결+ 외전 이렇게 뙇 마무리 짓고싶은 건 나의 욕심인가....중도하차욕구가 치솟아오른다...
아무튼 이제 10회, 외전 두 편 남았네요... 외전은 있을 지 없을지 장담은 못...
역시 연재는 하는 것이 아니었다.
앞으로는 단편만 해야지....썰만 풀어야지...
그리고 저도 그렇고 모두가 잊고 있었지만 김신은 나쁜 사람이죠......
PS/초대장 필요하신 분은 댓글로 메일주소 적어주세요!(여성향 부담없으신분, 초대받으면 바로바로 블로그개설하실분만!)
김신왕여
세상끝까지 09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단조롭게 흘러가듯 살던 여에게 있어 요근래의 시간은 거센 파도처럼 빠르게 휘몰아쳐서 정신을 쏙 빼놓기에 충분했다. 오랜 기간 노력하고 공들여 얻어낸 교열사 일을 이렇게 빠른 시일내에 정리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던 것이라 여는 사장님께 그만 두겠다 전화하는 동안에도 꿈꾸듯 현실감이 없어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백수에요- 한숨을 폭 내쉬니 신이 걱정마 내가 능력있는 남친이잖아- 따위의 농담을 건네오기에 금새 맹했던 하얀 얼굴이 발그레하게 물든다. 그 모습이 또 사랑스러웠던지 자연스럽게 여의 얼굴을 그러당겨 볼에 입맞춤하는 신이다. 촉-소리와 함께 볼에서 떨어져나가는 온기에 벌겋게 달아오른 귀를 몇 번 문지르던 여가 고개를 푸욱 숙인다. 정식으로 연인이 된지 시간이 제법 지났지만 여전히 이런 사소한 스킨십에 쉬이 적응하지를 못한다.
"오늘 덕화랑 외출한다며?"
"네. 형은 나보다 내 스케쥴을 더 잘 아는 것 같아."
"너에 대해 내가 모르면 안 되지."
어휴 팔불출, 어후 소오름, 양 어깨를 쓱쓱 비비며 두 사람을 흘기던 덕화가 쾅- 대문을 닫고 미리 대기해둔 차에 올라탄다. 잘 다녀오라는 인사와 함께 차까지 배웅하는 신에 미소지어보인 여는 왠지 놓기 싫은 그 손을 만지작거리다 차에 올라탔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까지 모든 준비를 여와 함께하며 그 곁을 지킬 것- 이것은 신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덕화의 중요한 임무였다. 일단 한 번도 외국에 나갈 일이 없었던 여였기에 여권을 만드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얼떨결에 덕화의 손에 이끌려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 사진을 찍혔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샌가 외국으로 나갈 서류준비를 착착 순차적으로 끝마치고 있었다. 기가 막힌 덕화의 업무처리속도에 여는 처음엔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그 다음엔 자연스레 신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저 저런 사람들을 여럿 거느리고 있는 신은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일까하는 단순한 궁금증에서였다.
"형. 새 마음 새 뜻으로 새로운 변신 어때요 콜?"
"뭐야 그게?"
어디로 끌려가는 지도 모른 채 빠르게 발을 놀리는 덕화에 조금은 버거웠던 여가 괜한 심통으로 지팡이를 톡톡 바닥으로 내리쳤다. 그제서야 걸음을 멈추고 여쪽을 힐긋이던 덕화가 이제 다 왔어요- 고집스레 의견을 표출한다. 곧 스르릉 자동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훅 끼쳐오는 독한 향내와 서걱서걱 가위질 소리가 이곳이 곧 미용실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덕화가 말한 새로운 변신이라는 것이 머리를 다듬자는 뜻이었나 뒤늦게 알아차린 여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설프게 선다. 이쪽으로 가실게요- 손을 잡아 이끄는 직원을 따라 폭신한 의자에 반강제로 앉혀지는데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난다. 직업병인가 가실게요라는 건 어디에서 비롯된 언어인가 고쳐주고 싶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이전엔 늘 가던 동네 이발소가 있어서 친숙한 중년의 아저씨가 타지방에서 돈벌고 있는 자신의 아들이 생각난다며 투박하지만 다정한 손길로 머리를 다듬어주곤 했었다. 그래서 지금 간지럽고 보드랍게 머리를 만지는 여성의 손길이 영 적응이 되지를 않는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같은 자세로 장시간 앉아있는 것은 아무래도 힘들었던지 꾸벅하고 고개를 떨구다 화들짝 놀라 정신차리고를 반복한다. 그러다 서서히 머리위를 먼지작거리던 손길이 멎어들고 다 됐습니다 수고하셨어요-하는 직원의 목소리가 반갑게 귓전을 스친다. 뭔가 굽슬하고 휑한 목덜미가 어색해 한 번 긁적인 여가 수고많으셨습니다 대답하며 어기적 자리에서 일어선다.
"와 형 대애박!!!!"
"왜그래? 그렇게 이상해?"
"완전 잘 어울리는데? 와 나 무슨 아이돌인줄."
능청스럽게 칭찬을 한가득 쏟아내는 덕화때문에 여는 고개를 푹 숙이며 어쩔줄을 몰라했다. 머리를 한 것 자체도 오랜만이지만 누군가에게 보인 것도 상당히 오랜만인지라 주목되는 시선을 태연하게 받아넘기는 것이 쉽지않은 탓이다. 뭐 얼마나 어떻게 바뀐건 지 알수가 없으니 우스꽝스러운데 덕화 저게 놀리는 거 아냐?라는 생각도 잠깐 들었고. 다시 한 번 스르릉-열리는 자동문에 이제는 제법 따뜻함이 섞인 바람이 훅 끼쳐온다. 가벼워진 머리칼 사이로 바람이 스며 허전한 마음에 자꾸 목덜미를 긁적이게 된다.
"형 나 잠깐 화장실 좀. 어디가지말고 여기 딱 있어요."
"알겠으니까 얼른 다녀와"
몇번이고 딱 서 있으라 경고하는 덕화의 당부에 자신이 무슨 어린 애도 아니고 유달스럽게 왜그러냐 타박하며 등을 떠밀었다. 뭐 덕화입장에서야 자신이 어린 아이보다 더 불안한 존재였을테니 저러는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곧 그 걱정과 염려가 괜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해주듯 예기치 못한 일이 여를 덮쳐온다. 신에게 늘 겁이 없다, 조심성이 없다. 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기에 근래에는 제법 자신의 상황에 대한 자각이 생겼고 그랬기에 평탄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다만 자신에게 해를 끼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위험요소들 중에 이렇게 어린 아이들은 들어있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하하호호 떠드는 순수한 웃음소리, 호기심 가득한 질문들로 가득찬 목소리에 자연스럽게 경계심이 허물어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아저씨 이 막대기 뭐에요? 왜 들고 다녀요? 마법사에요? 끊임없이 이어지는 질문들에 난색을 표하던 여가 어색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을 해야하나, 아니면 그냥 도망을 갈까하다가 아 덕화가 꼼짝말고 여기 있으랬지. 온갖 생각들로 머릿속이 포화상태다. 하지만 그런 여의 상태를 구분할만큼 어린아이들에게는 공감능력이라는 것이 충분하질 못했다. 천진난만하게도 여의 지팡이를 장난감처럼 손에 쥐고는 이리저리 흔들어대다 급기야는 끌어당기며 내달리기까지 한다. 그것을 뿌리쳤다가는 아이들이 다칠 것만 같아 마음 여린 여는 그저 그 자그마한 손에 꼼짝없이 이끌려갈 수 밖에 없었다. 몇 번이고 넘어질 뻔하면서도 엉거주춤 끌려가는 그의 뒷모습이 위태롭기 그지없었다.
*
"어디야?"
"모시겠습니다."
유려한 곡선의 검은 세단이 인적없는 시골길을 지나 녹슨 컨테이너 박스들이 즐비한 폐공장으로 들어선다. 차에서 내리는 신의 구두가 땅바닥에 닿자마자 검은 양복의 사내 여럿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와 허리를 숙인다. 오셨습니까 회장님- 대충 눈인사로 대꾸한 신은 도영이 인도하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탁-탁- 투박하고 무게있는 구둣소리가 허름한 공장내부에 메아리처럼 울려퍼졌다. 마치 심판을 기다리는 죄수처럼 맥아리없이 밧줄에 묶인 끄나풀들이 눈에 들어오고 시뻘겋게 충혈된 눈을 한 박사장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음에 눈치챈다. 가볍게 입꼬리를 말아올린 신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옆에서 줄맞춰 걸어오던 도영이 눈치껏 한 손을 받치고 담배에 불을 붙인다. 뿜어지는 연기가 공장의 부우연 먼지 속에 얽혀 흩어진다. 신의 발걸음이 박사장의 앞에 멈춰섰다. 핏발 선 눈동자를 내려다 보는 신의 눈은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잘 지냈어? 환영인사는 마음에 들고?"
"우음, 읍!!!"
청테이프로 칭칭 감긴 주둥아리가 악에 받쳐 소리를 질러보지만 짐승의 멱을 따는 소리로밖에 들리질 않는다. 그 위로 후욱 한숨을 내쉬듯 담배연기를 뱉어내며 손을 내밀자 옆에 있던 사내가 가죽장갑을 얹는다. 천천히 그것을 손에 끼워넣은 신이 매운 담배연기로 잔뜩 주름진 박사장의 미간에 담뱃불을 짓이겨 끈다. 다시 한 번 듣기 상스러운 소음이 울려퍼졌지만 여유롭게 귀를 후벼파며 딴청을 피울 뿐이었다.
"나는 주제를 모르는 것들을 아주 싫어해."
철크덩소리와 함께 묵직한 플라스틱 상자의 뚜껑이 열리고, 안에서 잡다한 연장들이 바닥으로 쏟아져 나왔다. 곁눈으로 그것을 내려다 보는 박사장의 눈동자에 형용할 수 없는 두려움이 가득 들어찼다. 신은 마치 보석이라도 고르듯이 신중하게 연장들을 쓸어내리다 적당한 크기의 망치를 들어올렸다. 비스듬하게 고개를 틀어 박사장의 동태를 살폈다. 큰 덩치의 사내 두 명에게 양팔을 잡혀 어떻게든 살아보겠다 발버둥치는 꼴이 우스꽝스러웠다. 신의 고갯짓에 덩치 중 하나가 한 쪽 팔을 슬그머니 놓아준다. 그러자 황망한 와중에도 팔을 마구 휘둘러댄다. 끝까지 주제를 모르는 그 모습에 신의 마음이 바뀐다. 신은 들고 있던 망치를 던져버리고 상자의 모서리에 쳐박혀 있는 다른 놈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허우적대는 그 팔을 왁살스럽게 잡아 비틀었다. 윽!!읍!!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청테이프에 갇혀 굵직하게 갈라진다. 우두둑-소리와 함께 곧 힘없이 추욱 늘어지는 팔을 더듬어 손가락 하나를 손에 쥔다.
"구멍을 내줄까 했는데."
여기에 말이야- 손가락을 쥐지 않은 나머지 한 쪽 손에는 펜치가 들려있었다. 신은 그 펜치를 들어 박사장의 관자놀이를 두 어번 툭툭 치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근데 또 내가 손해보는 걸 싫어해. 받은 건 배로 돌려줘야 마음이 편해져."
펜치가 무식하게 손톱밑을 파고들었다. 고개를 내저으며 제발- 애원하는 눈빛을 가소롭다는 듯이 비웃으며 펜치를 잡은 손에 힘을 줬다. 시뻘건 살점과 함께 뽑혀진 덩어리가 바닥을 뒹굴었다. 박사장은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고개가 뒤로 꺾였다. 작살맞은 물고기처럼 몸을 들썩인다. 신은 태평하게 다음 손가락을 잡으며 읊조렸다. '한 개-'
한 웅큼씩 손톱을 뜯어낼 때마다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박사장은 그저 발버둥 칠 뿐이었다. 온 몸을 사용해서 발버둥쳐댄다. 신은 그럴수록 더욱 억세게 손톱을 뜯어냈다. 심장이라도 도려낼 듯이, 지독하게도 무정한 얼굴을 하고. 부러져 못 쓸 것임이 분명한 팔이 꿈틀거리며 발악하자 그것을 그저 흥미롭다는 얼굴로 바라본다. '다섯 개-' 야무지게 다섯손가락을 모두 카운트한 신이 눈썹을 살짝 일그러뜨렸다.
"690억짜리 비자금 명부를 들고 도주, 끝끝내 변사체로 발견. 사인은 자살. 어때? 제법 어울리는 최후인 것 같은데. 내 시나리오가 마음에 드나?"
박사장의 핏발 선 눈동자가 굴러떨어질 듯이 튀어나왔다. 명부에 적힌 정재계 인사들은 자신들의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서로가 저 명부를 손에 넣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고 혹시라도 덮어쓸까 전전긍긍하며 사건 중간에 낀 변사체 하나쯤이야 쥐도새도 모르게 처리해 줄 것이다. 처음부터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너무나도 쉽고 또 고요하게 모든 것은 물 흐르듯 유순하게 지나갈 것이다. 사회를 장악한 권력층의 추악한 이면따위야 그들 손에 꼭두각시처럼 놀아나는 언론을 통해 쉬이 감춰지는 것이 하루이틀 일도 아니기에 이 모든 일은 그저 한 때 부는 미약한 바람일 뿐이다.
시체처럼 더이상 팔딱거리지 않는 사냥감을 내려다보던 신은 더 볼 일이 없다는 듯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피투성이로 번들거리는 가죽장갑을 벗어내자 도영이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받아든다. 그런 그에게 까딱 눈짓을 보낸 신이 그대로 뒤돌아 걸음을 옮긴다. 도영의 익숙한 발걸음은 박사장과 그 끄나풀들을 향했다. 그것이 시작을 알리는 신호라도 되는 듯 검은 덩치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미 질펀나게 담금질당한 몇몇으로 인해 아무것도 없는 폐공장이 피냄새로 진동을 했다. 도영은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사소한 움직임까지 낱낱이 지켜본다. 결코 허점을 보이지 않고, 실수조차 의도된 행동인양 능숙하게. 이것이 신의 철칙이었고 그것은 곧 자신의 철칙이나 매한가지다. '예쁘게 담궈서 공구리쳐-' 드르륵 드럼통 굴러가는 소리가 메마른 땅에 요란하게도 울려퍼졌다. 그것은 심해의 나락으로 굴러 떨어져 그들의 영원한 안식이 될 무덤이었다. 쓸데없이 쨍한 노을이 반사되어 눈이 부시다. 기가 막히게 낭만적인 날씨였다.
깔끔하게 뒷처리를 마친 도영은 신을 태운 세단을 지체없이 출발시켰다. 양손을 깍지 껴 배에 얹고 눈을 감은 자세의 신은 지나치게 평안하기 그지없었다. 얼마나 내달렸을까 유독 길었던 하루를 모두 지워내기라도 하듯 칠흑같은 어둠이 바깥을 완전히 삼켜버렸다. 그 고요한 평화를 깨부수듯 시끄럽게 울려대는 휴대전화소리에 꾹 감겼던 신의 눈이 어스름히 뜨여진다. 사적인 폰에서 흘러나오는 벨소리였고 착신자라고 해봐야 한정되어 있었기에 굳이 액정을 확인하지 않고 도로 눈을 감은 채 휴대전화를 귀에 가져다 댄다.
"무슨 일이야."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텁텁하게 갈라진다. 휴대전화에서는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곧 그 목소리에서는 결코 반갑지도, 가볍지도 않는 내용이 흘러나온다.
"형이, 여 형이 안보여요. 조금 전까지.. 방금 전까지 있었는데..그랬는데.."
가쁜 숨에 헐떡이는 목소리, 그리고 횡설수설하는 말투로 덕화가 얼마나 당황했는지를 알려주고 있었지만 신의 귀에 그따위의 것들이 들어올 리가 없었다. 깜깜한 밤하늘의 별들이 날카로운 유리조각이 되어 머리위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휴대전화를 든 손이 바들바들 떨린다.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손톱끝이 허옇게 초승달을 그려낸다. '애들 풀어- 찾기 전까지 살아돌아올 생각은 말고.' 여전히 경련하는 손이 휴대전화를 완전히 에워쌌다. 백미러로 신의 상태를 확인하던 도영이 괜찮으십니까- 입을 떼자마자 손에 사정을 두지 않고 집어던져진 휴대전화가 자동차 앞유리에 부딪쳐 산산조각난다. 그 파편에 긁힌 도영의 뺨에서 피가 흘러나왔지만 그는 그것을 신경쓸 겨를이 없이 눈치껏 최고 속도로 엑셀을 밟았다. 신의 얼굴은 온통 일그러져 있었고 그 분노를 채 담아내지 못한 광대가 파르르 떨렸다. 그에 비해 서늘하게 내려앉은 눈빛을 확인한 도영은 운전대를 잡은 손이 진땀으로 축축하게 젖었다. 신이 저런 눈을 하는 것은 유회장이 죽던 그 날 밤 이후로 처음 마주하는 것이었고 그만큼 그가 이성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임을 오랜 기간 곁을 지킨 도영은 알 수 있었다.
"젠장-"
꽉 눌린 신음처럼 뱉어지는 신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흔들린다. 여를 향한 마음의 무게가 고스란히 몸을 짓눌러 천근만근으로 가라앉았다. 두 눈 멀쩡하게 의식이 깨어있는데도 온 정신이 안개 속을 걷는 듯 희미하다. 1분 1초 속절없이 시간은 흐르는데도 그에게 당장 닿을 수 없는 차디찬 도로 위가 지옥불 위를 맨발로 걷는 것과 다름 없이 느껴졌다. 이것이 신이 자신에게 내리는 벌인가, 생각하자 허탈한 웃음이 지어졌다. 결코 신을 믿지 않았지만 신이 있다면 제발, 이 순간만큼은 제발, 자신의 업보를 그 아이에게 짊어지우지는 말아달라고. 심장이든 뭐든 다 내어놓을테니 제발. 꼬옥 내리감은 깜깜한 눈꺼풀 사이로 환하게 웃는 여의 잔영이 간들거렸다.
'Dokebi > 세상 끝까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신왕여] 세상끝까지 10 完 (11) | 2017.04.09 |
---|---|
[김신왕여] 세상 끝까지 08 (4) | 2017.03.19 |
[김신왕여] 세상 끝까지 07 (6) | 2017.03.01 |
[김신왕여] 세상 끝까지 06 (8) | 2017.02.26 |
[김신왕여] 세상 끝까지 05 (8) | 2017.0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