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서 죄송합니다. 잊고 있었어요.........ㅠㅠㅠㅠ
조직의 패밀리는 이제 다 나왔습니다. 엘,신,덕화,도영 네 명입니다.
그리고 심각함따위도 없습니다. 김신패밀리는 다들 유쾌하고 밝아요. 코믹입니다.
제가 머리가 나빠 인물의 다양성따위는 없습니다.....
똑같은 이유로 머리가 상당히 나쁘기 때문에 단편소설로서 빠르게 끝내고 싶.....
김신왕여
세상 끝까지 06
"오랜만이야. 김신."
"그 상스러운 복장은 또 뭐야?"
온통 새빨간 복장을 하고 공항을 빠져나오는 엘을 차에 비스듬히 기대 선 신이 퉁명스럽게 맞이했다. 또각거리는 하이힐마저 붉은색인 것을 확인한 신이 혀를 내둘렀다. 도대체 저런 건 어디서 구한 것인지. 한심하다는 듯 일그러지는 신의 얼굴을 보던 엘이 세상 환하게 웃으며 어깨에 친근하게 팔을 두른다. 쯧- 툭 쳐내져서 떨궈진 손을 어색하게 들어보인 엘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중국애들이 붉은 색을 좋아하잖아. 다 사업의 일환이지."
말이나 못하면. 신은 고개를 내저으며 차에 몸을 싣었다. 사실 신이 운영하는 조직의 본 거점은 대한민국이 아니라 라스베이거스에 있었다. 한국은 마약, 무기등을 밀거래하기에 제약이 너무 많기에 조직의 막대한 자금과 탄탄한 입지를다지기에는 적절하지 못한 나라다. 처음엔 뉴욕에 자리할까도 생각했었지만 놀기 좋아하는 엘이 카지노까지 판을 키우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라스베이거스에 자리잡을 수 밖에 없었다. 본 거점을 맡고 있는 엘은 1년에 한 두번 정도 한국에 들어와 얼굴을 내비추곤 했는데 이번 방문은 신의 부탁에 의한 계획에도 없던 방문이었다. 단 한번도 부탁이란 걸 해본 적이 없는 신이었기에 엘은 비행기 안에서 내내 설레었다. 신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그 쪽 상황은 좀 어때?"
"모두가 힘든 시기야. 불체자 단속 강화 덕에 힘들게 꼽아놓은 애들 다 공치게 생겼어."
"무리하지말고 적당히 유지만 해."
"그래도 이번에 중국하고 거래 덕에 꽁돈 좀 생겼지. 다들 아리긴 공수해달라고 난린데 얘네는 뜬금없이 왜 마카로프를 찾는 지 몰라. 덕분에 묵힌 재고 싹 털게 돼서 땡잡았지만."
한 물간 구식 권총을 왜 조달받고 싶어하는 지 알 수 없었지만 뭐 이 쪽이야 무기를 공급하고 대금만 받으면 그 뿐이니 그 쪽 사정이야 관심이 없었다. 김정남도 암살된 마당에 중국이 혼란스러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간만에 방문하는 신의 사무실을 쓰윽 한 번 둘러보던 엘이 다리를 꼬고 앉아 담배에 불을 붙인다. 이 참에 소파도 레드로 바꿔줘? 헛소리를 내뱉는 통에 신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꾸욱 누르며 엘의 맞은 편에 자리했다. 비실비실 약올리는 듯한 태도에도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하는 것은 단단히 약점이 잡힌 탓이다. 여기 부탁한 거야. 내미는 서류를 받아드는데 도로 뺏어가듯 손을 거두는 엘을 신은 뭐야?하는 눈으로 쳐다봤다.
"말 안해줄거야? 누군지."
"차차 알게 될거야."
"어지간히 맘에 들었나봐. 천하의 김신이 쩔쩔매는 꼴을 다 보고."
어쭈- 당황하는 얼굴까지. 누군지 몰라도 칭찬해 줘야겠네. 담배연기를 후-내뱉은 엘이 그제서야 상쾌해진 낯짝으로 서류를 내민다. 펼쳐진 자료는 여의 눈에 관한 내용들이었다. 사고로 인한 후천적인 실명이라기에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있었고 신은 몰래 여의 눈에 대해 조사했었다. 진중한 눈으로 서류를 훑어내리던 신은 자신의 그 선택이 옳았다는 것에 내심 기뻤다. 사고 당시의 진료기록을 분석한 의사의 소견으로 수술후 각막혼탁이나 시력저하는 있을 수 있지만 수술하는 데에 있어서 아무런 지장이 없고 성공확률 또한 높다는 것이다. 물론 더 자세한 건 직접 여의 현재 눈상태를 봐야 알 수 있는 것이었지만 어쨌든 희망적이라는 내용에 신은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걸 본 엘의 얼굴에는 경악이 걸린 것도 모르고.
"뭐, 절차는 까다로워도 요새는 기증자도 많고 당사자 의지만 있다면 어려운 일도 없을 거야."
본인의 의지. 신이 걱정하는 부분이 바로 그것이었다. 알고 지낸 지 수 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눈에 관해서는 이야기하기를 꺼려하고 여전히 타인의 호의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여다. 그런 그에게 이 두 가지에 모두 해당되는 사항을 꺼내들었다가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불보듯 뻔했기에 신은 고심하고 또 고심하는 중이었다. 최대한 여가 상처입지 않는 방향으로, 그 예민한 마음이 다치지 않는 방향으로 전달해야하는데 어떻게 해야 좋을 지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김신답지 않게 왜그러냐 그냥 밀어부치면 될 일 아니냐는 성화에도 신이 꿈쩍도 않자 아예 벌떡 일어서서는 내가 대신 말해 줘?를 외쳐대는 엘의 그 꼬라지를 힐끗 올려다 본 신이 땅이 꺼질 듯 한숨을 쉬자 이게 이제 누나말을 콧등으로도 안듣는다며 버럭버럭이다. 어릴 적 고아원에서부터 늘 엄마이자 누나이자 그 모든 역할을 다 해왔던 엘에게 유난히도 마음이 약한 신이었다. 그 덕에 해가 뉘엿뉘엿 지고 엘의 중국행 비행기 시간이 임박할 그 순간까지도 잔소리반 사업얘기반으로 시달려야 했다.
**
불행중 다행으로 여는 신의 집에 생각보다 잘 적응해보였다. 단 한가지 적응이 안되는 게 있었다면 신의 집이 목소리가 웅-웅- 울릴 정도의 크나큰 규모의 저택이라는 점이었다. 늘 몸을 겨우 뉘일 정도의 공간에서 생활하던 여에게 있어 이렇게 큰 집에서 생활하는 것은 제법 어색하고 고달픈 일이었다. 화장실이야 개인방에 딸려 있어 인지하기가 어렵지 않았지만, 당장 키친만해도 예전에 살던 자신의 집보다도 더 큰 규모인 바람에 냉장고나 싱크대등의 위치를 외우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일주일 정도는 신의 손을 부여잡고 냉장고는 식탁에서 사선으로 몸을 틀어 다섯 발자국, 싱크대는 냉장고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세 발자국, 이런 주입식으로 위치를 외우느라 상당한 애를 먹었었다. 점역교정사일은 여의 사정을 알게 된 사장의 배려로 자택근무로 돌릴 수 있게 되어 그나마 여유가 생겼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골머리가 아플 뻔 한 일이다.
이래저래 밀린 업무에 시달리다 컴컴한 밤이 되서야 집에 도착한 신은 현관문을 열자마자 풍겨오는 알콜냄새에 인상을 찌푸렸다. 마음같아서는 여의 곁에 24시간 붙어 그를 챙겨주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자신의 여건에 고민하다 대신 덕화를 붙여놓았던 것이 화근이었을까. 냄새의 근원인 식탁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신의 얼굴에 점차적으로 어둠이 깔린다. 기다란 식탁위를 나뒹구는 이미 비워진 맥주캔과 와인들은 지금 식탁에 엎어져 널부러져 있는 두 사람이 얼마나 많은 양의 알콜을 섭취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하- 이마에 손은 얹은 신의 깊은 탄식이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이마에 참을 인자를 가득 새긴 신이 먼저 덕화곁으로 발걸음을 옮겨 툭툭- 의자를 걷어찬다.
"당장 안일어나면 너 이 새끼 오늘 죽는 줄 알아."
그 정도로 일어나겠나 싶을 정도로 나즈막하게 읊조리는 목소리였지만 직업 특성상 잠귀에 밝을 수 밖에 없는 터라 그런지, 아니면 그 목소리의 주인이 신이라 그런건지 덕화는 좀비처럼 벌떡 몸을 일으켰다. 퀭한 눈으로 주변을 스윽 둘러보던 덕화의 눈동자가 신의 눈동자에 정착하자마자 덕화는 온 몸에 털이 쭈뼛서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이럴 땐 여의 등 뒤로 숨으면 최고의 방어막인데 싶어 다급하게 눈으로 여를 찾는데 맞은편에 엎질러져 있는 여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덕화는 더더욱 싸늘하게 몸이 굳어버렸다.
"아니.. 저 형이 와인을 마셔본 적 없다잖아.....요."
"...."
"아니...갑자기 맥주도 찾잖아.......요"
무언으로 일관하는 신의 눈치를 살살 보던 덕화가 결국 선택한 것은 걸음아 나 살려라- 줄행랑이었다. 재빠르게 2층 제 방으로 사라지는 덕화를 한껏 노려보던 신은 저걸 그냥 엘에게 보내버릴까. 그냥 뒷산에 묻어버릴까를 심각하게 고민하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러다 끄응- 뒤척이는 여의 기척에 시선을 돌린다. 천천히 다가가 부드럽게 엎드린 여의 어깨를 감싸쥐고 여야- 흔들어 보지만 여전히 앓는 소리뿐이다. 도대체 얼마나 먹인 건지, 주체못하는 여의 몸을 일으켜 가볍게 안아들자 칭얼거리며 안겨드는 숨결이 간지럽게 느껴진다. 여를 단단히 고쳐 안은 신이 순간 어느 방에 여를 눕혀야 할지 고민하다 결국 자신의 방문 손잡이를 돌린다.
"어....신이형 냄새다...."
출렁이는 매트리스에 아주 조금은 술이 깬건지 몽롱하게 풀린 눈을 하고선 허공에 말을 던지는 여를 바라보던 신이 피식 웃음을 흘리며 여의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그래. 나야- 대꾸하자 푸스스 흩어지는 여의 미소에 또 심장이 쿵쾅쿵쾅 곤두박질 친다.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뺨을 두 어번 더 쓸어내리자 감으로 어림잡은 방향으로 고개를 튼 여가 짐작하기 어려운 표정을 짓는다. 조금전까지 웃어보였다는 것이 무색할 만큼 무표정인 여를 신은 빠안히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마치 항의하는 것도 애처로운 것도 같아서 그 눈빛을 차마 놓칠 수가 없었다.
"형...가지마요.."
"내가 어딜 가."
"거짓말. 갈거면서.."
갑자기 가지말라니, 무슨 소리인가, 신이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사실 여는 초저녁부터 심란한 마을을 감출 수 없었다. 그 원인은 덕화가 던진 단 한마디의 말 때문이었다. 처음 한 두잔 술을 기울일 때까지만 해도 제법 좋은 분위기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자신이 신이 깡패 비스무리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에 놀라 까무러치는 덕화가 재밌기도 했고, 이것저것 순수하게 시각장애인의 불편함에 대해 묻는 덕화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주기도 했고 여러모로 좋은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만한 자리였다. 하지만 조금 취하기 시작한 덕화가 쓸데없는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고 그 이야기 속에 곧 신의 조직이 한국에서의 사업이 정리되면 모든 것을 털고 외국 본사로 떠날 것이라는 내용이 담기기 시작했을 때 즈음 여의 표정은 급속도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애초에 가족도 뭣도 아닌 우연히 만난 인연일 뿐이라고하지만 지금은 여에게 있어 신은 자신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소중한 존재다.. 그런 신이 떠나버리고 혼자 남게될 자신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여에게는 상당한 정신적 압박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한 잔 두 잔 기울이던 술잔이 지금 이 지경에까지 오게 된 것이고. 여의 시야가 안개낀 하늘처럼 부옇게 흐려졌다.
"형, 미국 간다던데.."
"누가 그래?"
"덕화가...."
"이 자식이.."
"안가면..안돼요...?"
아무것도 담지 않은 여의 텅 빈 눈동자가 신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 축축하게 젖어드는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신은 늘 머릿속이 까마득하게 꺼져버리고 만다. 하루에도 몇 번씩 선과 악의 사이를 오가고 영혼까지 송두리째 잠식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이 아이는 알고있기나 할까. 이미 단 한 순간도 여가 없는 미래를 꿈꾸어 본 적이 없다. 그가 없는 삶을 30년넘게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그가 없는 단 1초의 시간을 상상할 수 조차 없다. 이것이 신이 내린 벌인지 아니면 신이 내린 축복인 지 알 수 없었지만 그저 당신을 볼 수 있으니 축복이겠노라, 그저 그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내가 널 두고 어딜 가겠어.."
여의 눈가에 아지랑이처럼 흐르는 눈물을 연신 닦아냈다. 걱정하지 않아도 오히려 떠나가라 소리쳐도 절대로, 단 한 순간도 떨어질 수 없을 것인데 무엇이 그리 서러워 눈물을 쏟아내는 지. 무엇이 그렇게도 사무치는 지. 어린 아이처럼 입가에 호선을 그리고 끅 끄윽 소리내며 훌쩍이는 모습에 신의 심장이 다시 한 번 무겁게 내려앉는다. 그리고 또 한 편으로는 자신이 여에게 있어서 최소한 사라지면 이렇게 서글픈 눈물 정도는 쏟아줄 수 있는 존재로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기쁘기도 했다.
흐르던 눈물이 서서히 멎어들고 붉게 달아오른 볼을 쓰다듬어 내리는데 예기치 못하게 여의 손이 신의 손등을 덮어온다. 가느다란 손끝이 더듬더듬 손 마디마디 뼈를 따라 손목으로, 팔뚝으로 또 어깨로 목덜미로 옮겨 끝내 볼에 닿았을 때 멍하게 그를 방치하던 신이 화들짝 놀라 그 손을 잡아챘다.
"왜..그래? 무슨 일이야?"
"형 얼굴도 모르는데 나는.. 떠난다니까, 보고싶어지잖아.. 보지도 못하는데 보고싶어서. 기억하고 싶어서.."
먹먹하게 전해져오는 진심이 고스란히 살결을 타고 혈관을 파고 든다. 수면제를 들이부은 것처럼 온 몸의 힘이 빠져나가고 잡아챘던 손을 그만 놓쳐버렸다. 여의 손이 기다렸다는 듯 다시 신의 얼굴에 닿았다. 뜨끈하게 달아오른 손이 얼굴 윤곽을 쓸어내리다 부족했던지 이제는 나머지 한 쪽 팔마저 들고 아둥거리는 통에 신은 조용히 그 손도 잡아 자신의 얼굴에 안착시켜주었다. 얄쌍한 턱선, 편편한 이마에 뭉툭한 눈썹, 오똑한 콧대, 생각보다 부드럽게 휜 눈꼬리, 도톰하게 주름진 입술..하나하나 모두 머릿속에 새겨넣듯 더듬고 또 더듬는다. 세상 심각한 얼굴로 별 것 아닌 일에 열중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입가를 만지는 그 손끝이 간지럽기도 해서 피식- 김빠지게 웃어보이자 한 껏 얼굴 위를 유영하던 그 손가락이 멈춰선다.
신의 미소가 여의 심장으로 조약돌처럼 떨어졌다. 잔잔한 심장 위로 그 조약돌이 퐁-퐁-퐁-물결을 일으키며 다가온다. 이유도 모르고 걷잡을 수 없이 깊숙히 더 크게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가는 파동에 여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신과 함께 했던, 함께 하는 이 모든 순간이 황홀하고 꿈만 같아서, 눈을 뜨면 다 사라져버리고 희미해져버릴 까봐 여는 문득 무섭고 두려워졌다. 그리고 그런것들에서 오는 이 떨림은 온전히 여의 몫만은 아니었다. 입술 께에 머무른 손끝이 어쩌지도 못하고 자석처럼 공명했다. 신은 눈을 내리감았다. 들끓어오르는 혈액이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한 채 진동하고 여의 살결이 닿은 입술이 불에 데인 것처럼 뜨거웠다.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그 온기를 원하는 욕망이 샘솟는다.
하아- 더운 숨이 입술 사이를 비집고 나와 여린 손끝을 간지럽히고 티가 나게 움찔하는 그 손을 여며쥐고 손바닥에 입술을 묻었다. 술에 취해 잔뜩 예민해진 여가 간지러운 듯 흐응- 신음을 토해내고 신은 솟아오르는 불구덩이를 잠재우듯 여며쥔 손에 힘을 주었다. 미간에 잔뜩 주름을 잡힌 채 바들바들 떨어대는 그 욕망을 겨우 억눌러낸 신의 입술이 촉-소리와 함께 손바닥에서 떨어져나갔다.
"..물..가져올게."
여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 지 확인할 새도 없이 다급하게 방문을 나섰다. 신은 더이상 숨길 수 없을만큼 삐져나오는 제 더러운 욕망이 개탄스러워 머리를 짚고 방문에 기대섰다. 그저 곁에서 두고 볼 수만 있다면, 목소리를 듣고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는 것만 허락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것마저 욕심이었던 것일까. 곁에 있어도 그가 보고싶다. 그 향기를 들이키고 싶다. 흠뻑 그 향을 취하고 나면 이 미친듯한 갈망이 사그라들까.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다가설 수 없고 닿을 수 없는 딱 한 발자국, 그 만큼의 거리가 신의 심장을 갑갑하게 막아선다.
쾅- 문소리와 함께 갑자기 멀어진 신의 온기에 여는 한동안 뻗어진 팔을 내릴 생각을 못했다. 손바닥에 남겨진 뜨거운 숨결이 사라지기라도 할까 꼬옥 소중하게 움켜쥔 주먹을 천천히 제 심장께로 내려 가져왔다. 그 틈새로 새어나온 온기가 따뜻하게 몸을 감싸는 기분이 들었다. 혼란스러웠던 머릿속이 환하게 개이고 여전히 맥박은 파동했다. 세게, 더 깊게 꿰뚫어오는 그 파동에 여는 더 꼬옥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 물결의 파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다. 이제서야 안다. 뜨겁게 열이 타고올라 눈가로 울컥 눈물이 터지듯이 흘러나왔다.
"어떡해.. 좋아하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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