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예고한 조폭공맹인수 설정입니다. 인물소개 보고 오시면 좀 더 편합니다 ㅠㅠ
근데 별 내용이 없습니다. 어차피 자급자족인지라...ㅠㅠㅠㅠㅠ완결이 안날 수도 있......
김윤아씨의 고잉홈을 듣는데 이 두 사람이 생각나지 뭐에요...왠지 슬프네요.
술먹고 센치해져선 내용도 이상하네..어쩔 수 없...
김신왕여
세상 끝까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은 여에게 있어 그 어느날 보다 더없이 고역인 날이었다. 미끄러운 바닥은 거동을 불편하게 했고 빗소리가 집어삼킨 세상의 소리는 마치 자신이 어둠 속에 삼켜진 것만 같은 공포를 느끼게 했다. 편의점을 나서는 발걸음이 평소보다 더 조심스럽고 불안하다. 지팡이를 쥔 손에 베어나오는 긴장어린 땀방울에 혹여 놓치기라도 할 새라 그것을 더욱 세게 움켜쥔다. 대충 단출한 먹거리가 담긴 비닐봉지를 우산 손잡이에 걸어 쥐고는 더듬더듬 앞을 나아간다. 벌써 수 년 째 매일 한결같이 다니는 길인데도 비가 오는 날이면 이토록 불안하고 겁이 났다.
여의 보금자리는 골목 모퉁이를 돌아 고장난 가로등 불 빛이 불규칙하게 반짝이는 조용한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자주 고장나는 가로등이야 어차피 안보이니 그만이었고 조용하고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곳을 원했던 여에게 있어 최적의 장소였다. 무엇보다 주변에 계단도 없었고. 가족의 혹은 모두의 주목을 받던 과거의 찬란함과는 정반대의 생활이었다. 불미스러운 사고가 있고 얼마 되지 않아 하나 둘 그리고 모두가 자신을 떠나감을 느껴야했다. 유일한 버팀목인 가족마저 자신을 버렸을 때서야 '혼자'라는 철저한 테두리를 인식했다. 집을 나와 홀로서기에 나서 7년째, 당장 죽어도 상관없다 여겼건만 밑바닥에 내던져져보니 살겠다 살아보겠다 악바리같이 버텨내고야 만다.
쿠당탕- 여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려다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었던 낯선 소리에 화들짝 놀라 하마터면 지팡이를 놓칠 뻔 했다. 더듬더듬 질척하게 젖은 바닥을 지팡이로 톡톡 더듬으며 소리의 근원지로 가까이 다가갔다.
"크흡!!"
"박사장한테 가서 전해. 한 번만 더 내 눈에 거슬리면 그 땐 세상 빛 보기 힘들 거라고 말이야."
신은 상대의 어깨에 꽃힌 칼을 한 번 더 360도로 돌려 빼며 흥건하게 쏟아지는 피를 감정없이 내려다봤다. 빗물인지 핏물인지 분간할 수 없는 물웅덩이를 나머지 멀쩡한 팔로 엉금엉금 기며 뒷꽁무니를 빼는 상대의 뒷모습을 응시하다 쯧-신경질적으로 혀를 찼다. 그리고 피묻은 칼을 대충 셔츠에 문질러 닦아 자켓 안쪽 주머니에 찔러넣고는 뒤돌아 골목을 빠져나왔다. 아니, 나왔어야 했다. 골목입구를 턱하니 막아선 홀쭉하고 비리비리한 장신의 사내에 신은 멈칫 멈춰서며 다시금 자켓 안의 칼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예상 외의 목격자에 당황스럽기 그지없는 상황이다.
"어이 거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봤지?"
"본 게 아니라 들렸고, 야심한 시각에 좀 조용히 해주시겠어요? 제가 시끄러운 건 질색이라."
'그럼 이만' 제 할 말만 한 채 돌아서는 여의 모습에 신의 당혹감은 이제 어이없음으로 바뀌어 있었다. 제 허락없이 제 앞에서 등을 보이는 대담함, 시건방진 말대답. 모든 것이 그에게 있어서는 처음이었다. 신은 성큼성큼 발을 내딛어 현관문으로 들어서는 여의 팔목을 우악스럽게 잡아 돌려세웠다. 챙-소리와 함께 지팡이가 바닥을 나뒹굴었고 제 눈이나 마찬가지인 지팡이를 잃은 손이 긴장으로 바짝 경직된다. 당돌했던 아까의 태도는 어디로 갔는지 묘하게 사선으로 돌아간 고개와 어긋난 초점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굉장히 무례하시네요. 이것 좀 놓으시죠."
여는 우산도 내팽개치며 제 온 힘을 다 해 잡힌 팔목을 빼어내려 애썼다. 하지만 무슨 힘이 그리도 센 지 사내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제 팔목을 굳건히 잡은 채다. 되려 더 세게 옥죄어오는 고통에 결국은 여의 눈동자에 눈물이 핑 돈다. 발치에 채이는 음료수캔 소리가 조용한 동네에 울려 퍼졌다. 여는 자신이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나 누구에게인지도 모를 원망이 서려 괜시리 이 상황이 서러워졌다.
"어른이 말을 할 때는 눈을 봐야지."
신이 팔을 잡지 않은 나머지 한 손으로 여의 목 언저리를 움켜 쥐고 긴 손가락으로 턱을 돌려 저를 바라보게 했다. 분명 고개는 저를 향하는데 뭔가 위화감이 느껴진다. 여전히 초점이 맞질 않는다. 그제서야 신의 시선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지팡이와 여의 텅 빈 눈동자를 번갈아 주시하기 시작했다. 하- 드디어 답을 얻은 신의 입에서 탄식에 가까운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보지 못했다 한 들 들은 것은 있으니 좀 더 확실히 매듭을 지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너 어디가서 함부로 입 나불거리면.."
"저는 원래 세상 빛을 못보는데, 팔 다리라도 부러뜨리실 건가요?"
"뭐?"
"보시다시피 반병신이라 나불거릴 친구도 가족도 없어요. 그러니 염려하시는 일은 없을 겁니다."
바들바들 떨면서도 제 할 말을 다 뱉어내는 눈 앞의 맹인을 멍하니 쳐다보다 자연스레 팔을 잡은 손에 힘이 풀렸다. 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빠르게 팔을 내뺀다. '더 볼 일 없으시면 저는 이만.' 바닥에 나뒹구는 제 물건들을 챙기지도 못한 채 다급하게 자리를 벗어나는 여의 뒷통수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신은 그 자리에 못박은 듯 한참을 벗어나지 못했다.
현관문을 닫자마자 여는 꼼꼼하게 문단속을 하고는 그대로 문에 등을 기대어 스르르 주저 앉았다. 잔뜩 웅크려 구겨지듯 무릎에 고개를 묻었다. 여전히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심장이 쿵쾅쿵좡 아프게도 요동친다. 위협적인 사내의 존재도, 사람과의 신체접촉도 근 몇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혼자' 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 단련된 긴 세월이 무색할 만큼 왜 이렇게 초조하고 불안한 지. 제 울타리 안에 굴러 온 작은 온기 하나에도 이렇게도 무너지는 마음이 빗소리와 함께 녹아내린다.
지난 밤의 악몽같은 일로 인해 여는 밤새 뒤척이며 밤잠을 설친 터라 온 몸이 뻐근한 아침을 맞이했다. 왼 쪽 팔목은 멍이라도 들었는지 건들이기만 해도 찌릿한 통증이 온다. 여러모로 짜증나는 사내다. 어찌됐든 출근 준비는 해야했기에 여는 서둘러 운동화를 구겨신었다. 그러다 아차- 어젯밤 바닥에 떨어뜨린 지팡이를 챙기지 않았단 사실이 떠올라 얼굴에 급좌절감이 떠오른다. 그래도 인적이 드문 곳이니 누가 줏어가지만 않았다면 집 앞 어딘가엔 있겠지 싶어 서둘러 문을 열었다. 하지만 평소완 다르게 철컹- 문에 둔탁함이 걸린다. 손을 더듬어 문손잡이를 잡는데 지팡이와 우산과 어제 산 먹거리가 담긴 비닐봉지가 가지런히 걸려 있다. 깡패한테 동정심도 있었나.. 그런 생각까지 다다르자 설풋 웃음이 났다.
여는 점자교열사로서 근무한 지 3년째에 접어들었다. 처음 세상에 내던져 졌을 때엔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방구석에만 쳐박혀서 매일을 울거나 누군가를 원망하거나가 하는 일의 전부였다. 그나마 부모로서의 최소한의 의무라도 하겠다는 건 지 아니면 자식을 외면한 것에 대한 죄책감인지 매달 꼬박 꼬박 보내주는 생활비 덕에 당장 굶어죽지는 않을 수 있었다. 처음엔 안마사를 해볼 까 했었지만 태생이 손재주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는데다 사람과의 접촉, 대화, 관계 이런 것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해버리게 되는 성격탓에 시각장애인이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돌고 돌다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조용한 공간에서 최소한의 인간관계만으로도 할 수 있어 여에게 있어서는 최적의 장소였다.
퍽-
"에이 씨팔, 눈깔 똑바로 안뜨고 다녀?!!"
아아- 마가 낀 것이 분명하다. 어젯밤부터 되는 일이 하나없이 꼬이더라니. 한 밤중도 아니고 아침 출근길부터 취객과의 조우라니. 여는 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던 취객은 그 와중에 또 여의 표정을 봤는지 본격적으로 시비를 걸 태세를 취한다.
"너 이 새끼, 야 임마!"
"이 새끼 저 새끼 아니구요. 똑바로 뜰 눈깔도 없구요. 취하셨음 조용히 집에 가서 주무세요."
여는 상대방이 보고 있는지 안보고 있는 지는 알 수 없었으나 지팡이를 살짝 들어 보이며 본인이 시각장애인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취객에게 있어서 맹인인지 아닌지 사람인지 전봇댄지는 그다지 중요한 사항이 아니었다. 단지 시비를 걸 만만한 상대를 찾는 것일 뿐. 여는 멱살까지 잡히고 나서야 그 사실을 인지했다. 상대방이 어떤 모션을 취할 지 보이지가 않으니 그 공포는 배가 되어 심장을 짓눌러 왔다. 온 몸이 빳빳하게 굳어온다. 취객은 그런 여와는 반대로 더욱 대담해져갔고 끝내 지팡이까지 빼앗아 멀리 던져버리고야 만다. 챙- 소리와 함께 여는 완연히 어둠 속에 갇혀버린다.
"이렇게, 이렇게 대가리를 숙이란 말야 새꺄-"
여의 머리카락을 쥐어잡고 강제로 바닥을 향해 짓눌러대는 통에 여의 몸은 정처없이 흔들렸다. 그냥 죄송하다고 고개숙이고 말 걸 그랬나, 왜 하찮은 일로 고집을 세운것일까. 결국 내 인생도 하찮은 것은 아닌가. 머리카락을 붙잡히는 그 찰나의 순간에 여의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얽혀 들었다. 온 세상이 빙빙 도는 기분이다. 아- 그냥 이대로 모든 걸 내려놓고 싶다. 여의 몸이 크게 휘청한다. 그 때였다. 여의 견고한 울타리를 쉽게도 바스라지게 만드는 따스한 온기가 다가온 것은.
"기다려."
여는 무너져가는 제 팔을 지탱하는 단단한 손길에 이상하리만큼 따스함과 안정감을 느꼈다. 이 순간만큼은 제 모든 인생을 내맡겨도 좋겠다 싶을만큼의 정말이지 이상하다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을 그런 감정을. 곧 억- 단말마와 같은 비명소리와 함께 더이상 취객의 지독한 술냄새도 불안한 발자국 소리도 그 어떤 것도 느낄 수 없는 정적이 찾아왔다. 여는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들처럼 제자리에서 따스한 온기의 주인공을 기다렸다. 잠시 후 낯익은 발자국 소리와 낯익은 목소리가 다시 저를 찾아왔다.
"괜찮아? 다친 덴 없고?"
친절히도 제 손에 지팡이를 쥐어 주며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가다듬는 손길에 문득 여의 고개가 갸우뚱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목소리는 아는 목소리임에 분명하다. 순간 어젯 밤의 축축한 비냄새와 무거운 밤공기가 코를 스친다.
아아- 동정심 품은 갸륵한 깡패아저씨.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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