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공맹인수 좋긴한데 슬퍼서 눈 좀 뜨게해주고싶네요 우울해져서 원 ㅠㅠㅠㅠ
깨비가 소멸해서 더 슬픈가봐요 ㅠㅠㅠ깨비야 돌아와 폐하곁으로 ㅠㅠㅠ애통하다는 기별은 듣고 가 ㅠㅠㅠ
김신왕여
세상 끝까지 02
단지 호기심에서였다. 정말로 단지 그 뿐이었다. 빗 속에서 처연하게 떨리던 그 붉은 입술이, 창백하게 식어가던 낯빛이 자꾸만 떠올라서가 아니라 그저 그가 정말로 맹인이 맞는 지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어졌을 뿐이리라 신은 몇 번이고 자신을 납득시켰다. 본인이 문 손잡이에 걸어 둔 지팡이를 무사히 잘 챙기는 것도 또 그 지팡이로 더듬거리며 어딘가로 외출하는 것도 분명 그가 맹인인 틀림없을 증거들임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는 것인지...
그가 취객에게 부딪쳤을 때에는 하마터면 달려가 손을 뻗을 뻔도 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장애인들과는 어딘가가 많이 달랐다. 취객에게 당당하게 쏘아붙이는 모습이 어젯밤 제게 팔다리라도 부러뜨릴 거냐 당돌하게 묻던 모습과 겹쳐보여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위축되지도 쉽게 고개 숙이지도 않는 그의 모습은 새롭다 못해 신선하고 자꾸만 저를 뒤돌아 한 번 더 보게끔 만들었다.
"원래 그렇게 겁이 없나?"
"네?"
"요령있게 행동하란 뜻이야. 무서운 사람한테 말대꾸 하지말고 더러운 사람은 그냥 피하고."
의도치 않게 여의 출근길에 동행하게 된 신은 마치 말 안듣는 7살짜리 사내아이를 가르치듯 훈계를 했다. 제 원래 성격이 그렇다며 입술을 삐쭉 내미는 여의 모습에 바닥에 꼴아박힐 뻔 한 주제에 뭘 그렇게 잘했다고 큰소린지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하지만 사실 그런 여보다 자기 자신이 더 기가 막히는 행동을 하고 있음에 신은 새삼 놀라는 중이었다. 옆을 힐끗거리며 여의 안색을 살피는 모습이나, 보폭을 맞추려 천천히 걸으며 배려하는 지금의 모습은 밑의 것들이 보면 기겁을 할 모습임에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고마운 사람한테 감사인사는 할 줄 아는데. 어젯밤 지팡이 주워주신 것도 오늘 저 구해주신 것도 감사합니다."
"뭐?"
신의 걸음이 우뚝 멈춰선다. 여 역시 그를 따라 멈춰 서 고개가 비스듬하게 돌아간다. 진짜 눈이 안보이는 것이 맞나 저인 것을 어찌 안 것인가 싶어 신은 괜시리 여의 눈앞에서 손을 두 어번 휘휘 저어보았다. 미약한 바람이 여의 코끝을 스친다. 그제서야 신의 의중을 눈치 챈 여가 살풋이 웃어보인다.
"아저씨 목소리, 냄새, 발걸음으로 알았어요."
신은 멋쩍은 마음에 뒷목을 긁적였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너무 제멋대로 여를 평가하고 낮잡아봤던가.. 하지만 이 맹인은 조심성이 없어도 너무 없질 않은가.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거나 취객과 맞붙는 행위는 비장애인조차 하지 않는 일이건만 용감하다고 해야하는 건지 세상물정을 모른다고 해야하는 건지. 신은 자꾸만 신경이 쓰이게 만드는 인물을 다시 한 번 빠안히 쳐다봤다.
여는 다시 천천히 지팡이를 움직였다. 바로 옆에서 잔잔하게 일렁이는 낮은 구두굽소리를 들으면서 조금 더 안심하며, 보다 더 설레이는 마음으로. 어둠 속에서 살게 된 이후로 처음 느껴보는 안도감이었다. 만난 지 24시간도 되지 않는 타인일 뿐인데다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를 수상한 사내인데도 불구하고 왜 따스함이 스며오는지, 여는 좀 더 그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이 동네 사세요?"
"..."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
궁금한 것이 차고 넘치는데 당사자는 대답이 없었다. 괜한 걸 물었나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는 사람한테 너무 깊이 파고들었나 깡패 직업상 곤란한가. 여는 제멋대로 깡패아저씨라고 넘겨짚으며 적막속에서 상상의 타래를 펼쳤다. 그래도 자신이 해를 끼칠만한 사람은 아닌데 답없는 사내가 괜히 섭섭하게 느껴졌다.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을만큼 못미더우면서 왜 나란히 걸어줘서 호의일 것이라고 사람을 착각하게 만드는지. 오기가 생겼다.
"..이름이 뭐에요..?"
"..."
이름정도는 알려줘도 되질 않는가. 이제 이 신호등만 건너면 직장인데. 이 길만 건너면 헤어지는데. 다시 마주칠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는데. 여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가족들에게 버림받았을 때조차 이런 감정은 아니었는데. 여의 고개가 푹 숙여졌다. 눈시울이 시큰해져 부러 눈동자를 꾹꾹 깜빡였다. 신호등이 파란 신호로 바뀌었음을 알리는 신호음에도 여는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멈춰선 채였다. 신은 그런 여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망설여진다 모든것이. 사사로운 감정도 시덥잖은 관계도 존재해서는 안되는 삶이건만 무엇이 이토록이나 저를 흔들어대는 것인지. 띠리링 띠리링 신호등이 두 번째 파란 신호를 알려온다. 여는 조금은 어긋난 시선으로 신을 향해 몸을 틀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제 얼굴이 곧 울음이라도 터뜨릴 듯 아슬하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여는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느껴지는 지팡이를 천천히 더듬어 발걸음을 옮겼다. 그에게서 멀어지는 한 걸음 두 걸음에 미련과 아쉬움이 뚝뚝 떨어진다. 그리고 세 걸음째에 접어들 때 즈음 살랑이듯 불어오는 목소리에 온 몸에 소름이 돋을만큼 환희를 느꼈다.
"...김신."
밝은 햇살 아래 여의 얼굴에 화창한 미소가 걸렸다. 지켜보는 그 누군가의 심장에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갈 만큼의 찬란한 미소였다.
아스라이 피어오르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갇혀 한참을 걷고 걷고 또 걸었다. 아무리 걸어도 그 얼굴이 잊혀지지가 않음에 긴 탄식을 내뱉으며 사무실로 들어섰다. 곧 기다렸다는 듯이 소파에서 튀어오르는 덕화녀석 덕분에 머릿속 그 얼굴이 산산조각 나버렸지만.
"아 형! 대체 어디갔던 거야? 혼자 다니지 말랬지!"
"형. 어디갔던 거야. 혼자 다니지 말랬지. 세 마디가 다 반말이다?"
"아니.. 위험하다고 했잖아.......요."
덕화의 목소리가 곧 콩알만큼 기어들어가며 강아지처럼 신의 눈치를 살살 본다. 보는 눈이 많으니 회사에서는 호칭, 말투, 몸가짐 모두를 조심하라고 일러두었건만 아직도 때때로 철없이 구는 덕화탓에 신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회장 김신 두 글자가 새겨진 명패는 저를 믿는 또는 믿지 않는 수많은 자들의 머릿수만큼이나 무거웠다. 또한 수많은 이들이 흘린 피만큼이나 비린내가 났다. 유신그룹의 선대회장이자 초대회장이었던 고 유신재회장은 아버지나 다름없는 분이었다. 하지만 그가 아버지라는 얼굴 뒤로 퀴퀴하게 썩은 검은 속내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안 건 그에게 거둬지고 난 후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처음은 별 것 아닌 페이퍼컴퍼니였다. 이제 막 성장의 궤도를 밟아올라갈 단계에 접어들었을 그 즈음에 유회장은 갑자기 고아원을 돌며 많은 아이들을 거워들였다. 그 수는 대략 스무명남짓. 그들은 김신의 누나이자 형이자 동생이자 가족 그 모든 것이었다. 대부분이 어린 나이였고 고사리같은 그 손으로 칼을 쥐고 총을 쥐고 누군가의 모가지를 쥐었다. 아이들이 한 명씩 한 명씩 사라져감에 따라 회사는 급속도로 성장했다. 분노와 염려로 눈동자가 핏빛으로 물들어 갈 때마다 유회장은 버릇처럼 지껄였다. 너희 같은 버러지가 오물을 덮어써 준 덕분에 자신이 빛에 다가갈 수 있는거라고. 순간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검붉은 피를 온 몸에 뒤집어쓰고 공허하게 앉아 울던 덕화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피가 통하지않을 만큼 꽉 쥐어진 주먹에 신의 의지가 담겼다. 아아 그렇다면 모든 어둠을 삼켜버리고 빛마저 이 손안에 움켜쥐겠노라고.
고작 네 명이었다. 살아남은 것은. 조직 밑바닥부터 각자의 위치에서 정보를 수집해 온 덕분에 유회장을 무너뜨리는 것은 생각보다 쉬웠다. 아직도 유회장의 심장에 칼을 쑤셔넣었을 때의 그 감촉과 기억이 생생하다. 자신이 키운 개새끼한테 물리는 기분이 어떠하냐고. 결국 나는 이 어둠을 모두 삼켜냈으니 당신이 가지지 못한 빛마저 가져보이겠다고. 울컥 울컥 쏟아져나오는 그 더러운 피가 묻은 구둣발을 유회장의 행거칩으로 대충 문질러 닦아 그 얼굴에 던지며 눈감은 그 순간까지도 비웃어 주었다.
"형, 아니 회장님 무슨 생각하세요?"
"아냐. 박사장쪽 움직임은 어때?"
"아직은 잠잠. 애들 좀 데리고 다녀요 제발. 내가 불안해서 일을 할 수가 없어 아주."
유회장이 만들어 놓은 정경유착의 늪에서 빠져나오기까지는 제법 시일이 오래 걸렸다. 찌끄러지들을 다 쳐내고 나니 남은 것이 박사장이었는데 큰 돈줄이었던 유회장이 사라지자 불안해진 정치인들의 뒤를 봐주는 놈이었다. 아마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김신을 쳐내고 유신그룹을 삼키고 싶어 할 것이다. 이것이 덕화가 신을 걱정하는 가장 큰 이유임에도 불구하고 당사자인 신은 어쩌면 저리도 태연한 것인지. 혼자가 편하다며 말을 잘라 먹는 신 때문에 덕화의 입술이 툭 튀어나왔다.
"입 집어넣고. 여기 사는 사람에 대해서 좀 알아와. 조용히."
"누구길래?"
"그건 알 거 없고."
"여자구나? 이뻐요?"
이쁘냐며 알짱거리는 덕화녀석을 겨우겨우 내쫓고 나서야 신은 소파에 등을 깊게 묻었다. 이쁘냐고?.. 순간 티끌없이 맑은 눈동자와 새하얀 얼굴, 붉디 붉은 입술에 걸리는 해사한 미소가 떠올랐다. 쿵쾅쿵쾅 심장이 요동친다.
"예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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